임수경이 1989년 밀입북해 평양에서 활동하는 모습


외교부가 '임수경 밀입북 사건' 외교 문서를 공개하라는 변호사 단체의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했다. "법률과 지침에 따라 심의해 (비공개) 결정했다"는 이유였다. 변호사 단체는 이에 불복해 조만간 법원에 외교부를 상대로 관련 정보 공개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작성된 지 30년이 지나 기밀 해제된 1989년도 외교문서 약 24만쪽을 공개하면서 당대 최대 관심사였던 '임수경 밀입국 사건'은 비공개해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사건 문서를 비공개 처리한 사실이나 그 이유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지난 1일 외교부에 임수경 사건 문서도 다른 외교 문서와 마찬가지로 국민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외교부는 지난 14일 이를 거부하고 임수경 문서의 비공개 결정을 유지하겠다는 취지의 결정을 한변에 통지했다. 이 결정 통지서에서 외교부는 "(이번) 외교문서 공개시 법률(정보공개법 9조)과 지침에 따라 공개 여부를 심사했다"면서 "비공개 결정된 (임수경 밀입북 관련) 외교문서는 5년 후 재심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해당 사건 문서의 비공개 결정에 관련 법률과 지침이 어떻게 해석됐는지 등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한변은 이에 성명을 내고 "헌법과 정보공개법에 의해 부여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심히 부당한 조처"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정은) 국민적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라면서 "외교부가 내세우는 정보공개법 제9조는 너무 막연하여 도대체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변은 "현 정부는 유난히 북한과 관련하여 문제 될 만한 일은 꺼려 왔는데, 국민은 '임수경 방북'과 관련하여 당시 임종석 및 전대협이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어떤 발언과 행적이 존재하였는지에 관하여 헌법상 '알 권리'를 가진다"면서 "이는 (4·15) 총선에서의 정치적 유불리에 의하여 좌우될 것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외교부의 비공개결정은 헌법상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임을 경고한다"면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의 임수경 외교문서 비공개 처분은 이번 총선 기간에도 논란이 됐다. 외교부 당국자가 밝힌 비공개 처분 사유의 설득력이 떨어져 정부가 총선 전 집권 여당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총선을 앞두고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의 '친북 행적'이 재조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꼼수를 썼다"는 지적도 나왔다. 외교부가 임수경 문서를 비공개 처리한 이후 1989년 임수경 북파를 기획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선거 기간 여러 지역구를 돌며 여당 후보들 지원 유세를 하기도 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2일 서울 광진구에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 지원 유세하는 모습.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달 31일 비공개 처분 이유에 대해 "임수경 방북은 1989년 6월 있었지만, 그 이후 후속 상황이 있어 비공개한 걸로 안다"고 했다. 1989년 당시 종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던 사건이라 일단 비공개 결정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동구권 국가들과의 수교 비화 등 1989년 시작돼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사안이 대거 포함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또 '왜 임수경 문서는 쏙 빠졌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비밀 방북했는데 외교문서가 있을까? (문서가) 생성됐나 모르겠다"고 했다. 문서가 없을 수도 있다는 투였다. '없다는 건가, 있는데 공개 안 한다는 건가'란 후속 질문에 이 당국자는 "(임수경이) 방북해서 서울 돌아왔지 않느냐. 외국 정부와 나눈 대화가 문서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수 시간 뒤 언론 취재로 1989년도에 생성된 '임수경 밀입북' 문건이 160여쪽에 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당국자는 이날의 최대 관심사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았거나,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이다.

이후 외교부는 "개인 신상에 관한 내용이라 비공개했다"는 해명도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지낸 공인에 대해 '개인 신상' 운운한 것 자체가 궁색한 변명이란 지적이 나왔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작년 외교부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에 대한 문서를 공개하지 말았어야 한다. 취재진 사이에선 "외교부가 하루 종일 말 돌리기만 한다"는 말이 나왔다.

임수경이 1989년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는 모습.

1989년 한국외대 4학년이었던 임수경은 전대협 의장인 임 전 실장의 지시로 그해 6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평축)에 전대협 대표로 참석했다. 외교부는 이 사건과 직결된 문서는 감췄지만, 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문서는 일부 공개했다. 주로 북한의 우방인 중남미·아프리카 정부 관리들이 임 전 의원을 구속한 한국 정부를 비방했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