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 문학전문기자

감염병은 아주 오래전부터 문학의 질료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도입부는 역병의 창궐로 꾸며졌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 그리스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를 침공한 아가멤논의 오만방자함에 분노해 전염병을 퍼뜨려서 병사들을 줄줄이 쓰러뜨렸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도 역병에 시달리는 도시국가를 무대로 삼고선 "온 도시가 향연(香煙)과 더불어 구원을 비는 기도와 죽은 이들을 위한 곡소리로 가득하구나"라는 탄식으로 시작했다.

대규모 희생자가 속출하는 질병을 소재로 문학은 인간이 되풀이해서 치르는 전쟁의 비극을 비유하거나,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폭력을 묘사했다. 현대문학에 들어와선 감염병이 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시선을 제공해 왔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소설가 조제 사라마구의 장편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시력 상실이 유행병처럼 퍼지는 가상 상황을 통해 현대 문명의 맹점을 지적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 말 그대로 눈이 먼 인간 사회에 경각심을 촉구했다. 이 소설은 지난 1995년 발표됐지만, 최근엔 지난 2008년 세계적으로 금융 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연상케 한다는 해석도 있다.

감염병 문학의 정점을 꼽으라면 역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1947년 출간)를 빼놓을 순 없다. 지금 인류가 호되게 앓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그 소설의 주제 의식이 비로소 제대로 그리고 널리 읽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소설 중에서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대목이 아닐까.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균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일러스트=이철원

인류가 팬데믹(세계적 유행병) 시대를 맞아 인종과 지역의 구분 없이 동시에 공동체를 위한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마치 소설 '페스트'의 세계를 재현하는 듯하다. 카뮈가 제시한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란 그의 철학적 에세이 '반항하는 인간'에서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묘한 명제로 표현됐다. '나'는 삶의 유한성에 좌절해 자살을 택하는 대신 자기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 때문에 반항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유지를 위해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도 '우리'와 함께 반항한다는 것이다. 카뮈의 반항은 실존의 부조리에 맞서는 형이상학적 저항에 그치지 않고 종교의 우상 숭배와 그 비슷한 정치적 전체주의도 물리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소설 '페스트'의 감염병은 그가 반항하려고 한 모든 악의 은유였다. 그 반항의 동력은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정의가 조화를 이룬 연대(連帶) 의식이었고, 그것이 소설 '페스트'를 통해 형상화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인류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세상을 맞게 될 것이라고들 한다. 곧 닥칠 경제 위기는 물론이고 신종 바이러스의 부단한 발생을 비롯해 기본 소득 논쟁, 재택 근무와 비정규직 차별, 원격 의료 찬반 등등 논란거리가 우후죽순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 심지어 감염 경로 추적에 동원된 테크놀로지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보건 파시즘'에 악용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얼핏 이 모든 쟁점은 막연해 보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념과 이익집단에 따라 새로운 갈등을 촉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카뮈가 고민한 자유와 정의의 조화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른바 새로운 표준의 기본 확립이 시급하다. 프랑스의 석학으로 꼽히는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최근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이타주의(利他主義)에 기초한 다른 형태의 사회를 의식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설파했다. "오늘날 우리는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공감과 배려, 배분, 공유의 선언이 등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저마다 독창적으로 타인에게 이로운 존재가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복합적으로 전환기를 겪고 있다. 감염병과 싸우면서 총선까지 치렀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로 인해 심리적 내전 상태까지 겪은 처지에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악랄한 정치적 혐오 바이러스가 창궐한 꼴을 한심하게 방치해야 했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지구촌이 '연대 의식'과 '이타주의'를 성찰하기 시작한 상황을 맞아 우리도 차분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그러기 위해선 새 국회가 정치적 혐오 바이러스의 숙주(宿主)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