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논설실장

지난 3년 문재인 정부의 모든 국정 스케줄이 4·15 총선에 맞춰져 있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총선을 이겨 좌파 집권을 연장하려는 정치공학적 목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 이념 주도의 자해(自害) 국정으로 치달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국가 전체로는 손해여도 자기편에 이익 되고 표 얻는 데 도움 되는 정책들을 3년 내내 쏟아냈다. 소득 주도 성장론과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과격한 근로시간 단축, 탈원전, 노동 개혁 후퇴, 기업 때리기, 반(反)시장 규제 등등이 그것이다. 유권자 지갑에 현금 꽂아주고 표를 사는 매표(買票) 정책도 끊이지 않았다. 선거 승리라는 정파적 목표 아래 국익과 국가 미래가 후순위로 밀렸다.

3년간의 '선거 주도 국정'은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고 자영업과 서민 경제가 무너졌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져 소득 격차가 확대됐다. 정책 부작용과 역효과를 말해주는 증거들이 차고 넘쳤지만 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실패한 정책을 고치는 대신 눈가림 현실 호도로 일관했다. 남 탓 핑계를 대거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거짓말로 실상을 덮었다. 세금 퍼부어 가짜 일자리 만들고 억지로 성장률을 끌어올려 수치를 분식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나라 경제야 어찌 되든 선거만 이기면 된다는 식의 국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4월 15일이 왔다. 선거는 끝났고 총선까지 버티자는 문 정권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까지 경제를 망친 정권이라면 볼 것도 없이 참패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경제 실정(失政) 이슈는 선거판을 압도하지 못했고, 심판받아야 할 여당이 선거 기간 내내 압승을 자신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자기편 챙기기 국정으로 재미 본 여권은 앞으로도 정책 전환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소득 주도'와 '탈원전' 표현을 공약집에서 빼면서도 국정 기조엔 변함없다고 못박았다. 지금까지와 똑같은 '선거 주도 국정'으로 이젠 대선에 올인하겠다는 것이다.

문 정권으로선 자신감이 붙었을 것이다. 국민 대신 자기편, 국익보다 진영 이익 챙기는 국정이 선거에 유리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을 것이다. 친문 핵심들은 노무현 정권이 몰락한 것도 친시장 우파 기조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노무현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며 이를 갈았다던 그들은 지금 "우리가 옳았다"고 환호하고 있을 것이다. 재집권이 지상 과제인 그들에겐 경제가 곤두박질쳐도 크게 상관이 없다. 핑곗거리는 수두룩하고 세금 퍼부어 땜질하면 된다. 정 안 되면 통계를 분식해 국민 눈을 가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2년만 더 끌면 대선 승리도 떼 놓은 당상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들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다. 문 정권이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 있다. 경제 환경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문 정권 전반기는 글로벌 경제가 더할 나위 없는 호조였다. 덕분에 아무리 경제 운영을 엉망으로 해도 '폭망'까지 가진 않았다. 이제 코로나 위기가 닥쳐왔다. 그 좋은 여건에서도 부진에 시달렸는데 초유의 경제 위기가 펼쳐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능함이 입증된 이 정부가 미증유의 코로나 지옥을 이겨낼 수 있을까. 적어도 세금 풀어 땜질하거나 통계 마사지로 눈가림하는 꼼수 갖고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재정의 봄날도 갔다. 그동안 문 정부가 세금을 펑펑 쓸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정부가 세제 개편을 해놓은 덕이 컸다. 그러나 경제 자해로 세수(稅收) 풍년은 3년도 못 가 끝났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써야 하는데 재정 실탄은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마음대로 국채를 찍을 형편도 못 된다. 정부 빚이 급증하면 국가 신용도가 하락해 더 큰 위기로 번질 위험성이 있다. 벌써부터 국제 신용 평가 기관들은 우리를 향해 신용 강등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세금 퍼붓기로 해결하려는 이 정부에는 치명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문 정부로선 '코로나 핑계'라는 최후의 카드를 믿고 있을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코로나가 경제 실패를 덮어주기는커녕 문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함을 낱낱이 드러내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각국 정부가 실력을 겨루는 정책 경쟁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세계 공통 위기 앞에서 어느 나라가 대응을 잘했고, 어느 정부가 경제 회복에 성과를 거두었는지 그대로 성적표가 나온다. 이 거대한 위기 앞에서 꼼수로 눙치거나 남 탓 핑계로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정책 오류가 있거나 실력이 떨어진다면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

문 정부가 이념형 국정을 고집하는 한 이 절박한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은 없다. 지난 3년 같은 '선거 주도 국정'을 계속했다가는 여지없이 무능함을 드러내고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이제 총선은 끝났고, 경제 실정을 그렇게도 감추고 싶어 하는 문 정부 앞에 '진실의 지옥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