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고 화도 나죠. 하지만 집행부가 폭주하는 걸 멈추려면 임금 협상이 빨리 끝나야 하니까 돈이라도 내고 빨리 끝낼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거죠."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일하는 A씨는 최근 노조 집행부가 결의한 '30만원 특별기부금 일괄 갹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는 지난 10일 대의원 회의를 열고 "전 조합원이 받게 된 성과급에서 30만원씩 '특별 기부금' 명목으로 떼어내 파업 참여 조합원들에게 나눠주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르노삼성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은 전 조합원의 20~30%에 불과하다. 이들은 '무노동 무보수' 원칙에 따라 임금 일부를 못 받았다. 이들의 금전 수입이 줄자 입장이 곤란해진 노조 집행부는 전 조합원에게 돈을 갹출해 파업 참여자에게 나눠주자는, 르노삼성 20년 역사상 초유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조합원들 내부에선 불만이 들끓었지만 대의원 회의에서는 16명 중 13명이 갹출안에 찬성했다. '왜 찬성했느냐'고 묻자 A씨는 "30만원 손해 보더라도 어떻게든 임협이 빨리 끝나야 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그는 "현 노조 위원장이 '자기편'인 파업 참여자들의 손실을 보전해 주자며 또 파업할까 봐 겁이 났다"고 털어놨다.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는 2018년 임단협 때 일부러 잠정합의안 부결을 유도한 뒤, 재파업에 돌입한 적이 있다. 노동법상 임협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진 파업할 수 있는 권리가 남아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 일단 집행부가 하자는 대로 해주고 임협을 끝내 파업 리스크 없이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노조원들의 바람대로 르노삼성 노사는 14일 임협을 최종 타결했다.
2015~2017년 3년간 무분규 임단협 타결로 '노사 관계' 모범생으로 불렸던 르노삼성은 2018년 말 현 노조 집행부가 들어선 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됐다. 현 집행부가 글로벌 자동차 산업 위기 속에서도 파업을 강행한 탓에 일감은 계속 줄었다. 노조 집행부는 "파업 덕분에 성과급 규모가 커졌다"고 주장하지만, 조합원 대다수는 "파업 때문에 본사에서 해외 수출 물량을 못 받아와 회사 사정이 악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조합원들은 가족·친구들로부터 '너희 회사는 파업 중독이냐'는 욕도 먹었고, 일감이 줄면서 친했던 선후배들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나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무엇보다 집행부가 파업 참여자와 불참자를 갈라놓은 탓에 노노(勞勞) 갈등이 격화했다. 어제까지 형님 동생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왕따'가 나오기도 했다.
A씨는 "대표자 한 명 잘못 뽑은 대가가 이렇게 클 줄 그땐 몰랐다"고 했다. 조합원들 중에선 "그저 마음 편히 일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꽤 많다. 조합원을 대표한다는 노조 집행부는 이런 대다수의 마음을 모르는 걸까, 알면서도 외면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