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15 총선 투표를 독려하는 피켓 문구로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를 불허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12일 "'민생 파탄'이란 표현은 야당이 주로 내세운 구호로서 현 정권을 연상시킨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반면 선관위는 '100년 친일(親日) 청산 투표로 심판하자', '투표로 70년 적폐 청산' 문구는 허용했다. 선관위 측은 "100년은 과거 친일을 모두 아우르는 표현으로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반대하거나 특정 정당을 유추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공직선거법은 누구든지 투표 참여를 권유할 수 있지만,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해당 문구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후보와 미래통합당 나경원 후보가 맞붙는 서울 동작을 지역에서 각각 사용됐고, 선관위는 친여(親與) 단체가 내건 '100년 친일 청산' 문구만 허용했다. 야당은 반발했다. 야당 관계자는 "여당이 총선용 구호로 공공연히 사용해 온 '친일 청산'은 허용하고, '민생 파탄'을 불허하는 것은 야당 탄압"이라고 했다.
4·15 총선을 사흘 앞두고 각 지역구에선 여야 모두 투표 참여를 요구하는 피켓 홍보를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후보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캠페인성 투표 독려'이지만, 여야 모두 각 정당 상징 색을 활용하며 당의 입장이 간접적으로 반영된 문구를 내세우는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후보와 미래통합당 나경원 후보가 맞붙는 서울 동작을의 경우 친여 단체들은 '투표로 100년 친일 청산' '투표로 70년 적폐 청산'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면서 투표 독려를 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친일 야당과의 싸움"이라는 여권의 선거 전략에 따른 것으로 해석됐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전략본부는 최근 지역구 253곳 후보들에게 '21대 총선 전략 홍보 매뉴얼'을 배포하면서, 홍보·유세 지침으로 "아베 정권을 옹호하며 일본에는 한마디 비판도 못 하는 미통당, 우리 국민은 이번 선거를 한일전이라고 부릅니다"를 제시했다.
반일(反日) 단체인 '아베 규탄시민운동'도 나 후보 유세 현장을 따라다니며 '친일파 없는 국회' '친일 정치인 창피하다'는 등의 피켓을 들었다. 민주당 이수진 후보는 사전투표날인 지난 11일 '독립운동은 못 했지만 사전투표는 함께'라는 플래카드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여권이 이런 식의 투표 독려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100년' '70년'이라는 기간은 '보편적으로 긴 기간'이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유추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동작을 지역에는 '100년 친일 청산, 70년 적폐 청산'이라는 문구가 적힌 투표 독려 현수막이 걸려 있다. 다만 선관위는 '총선은 한일전이다' '투표로 친일 청산'은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반대하기 위한 구호로 현재 사용되고 있다"며 불허했다.
반면 서울 동작을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사용한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 '거짓말 OUT 투표가 답이다'라는 문구는 불허했다. '민생 파탄' '거짓말 OUT'은 특정 정당·후보를 연상케 해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민생 파탄'은 야당이 외쳐온 구호로서, 현 정권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또 서울시 선관위는 '거짓말 OUT'이란 문구가 이수진 후보를 연상케 한다고 판단, 해당 문구도 불허했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나경원 후보가 유세하면서 상대 이수진 후보를 겨냥, '거짓말 후보, 거짓말 OUT' 얘기를 자주 했다"며 "'거짓말 OUT'은 이수진 후보를 연상시킬 수 있다고 해석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서도 '거짓말OUT' 문구를 불허한 건 아니고, 나 후보가 많이 언급을 했기 때문에 동작을에서는 부적절하다고 개별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선관위는 투표 독려 행위를 하는 주체는 나 후보 캠프가 아닌 제3자인 만큼, 야당의 구호나 야당 후보의 말을 인용하는 건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나 후보 측은 "선관위가 억지 주장으로 여당 후보 편을 들고 있다"고 반발했다.
서울시선관위는 동작을에서 '민생 파탄' 피켓을 들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찾아가 "선거법 위반이니 피켓을 내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관계자는 "여당은 줄곧 '친일 대 반일' 프레임으로 이번 총선 선거운동을 해왔다. 그런데도 '친일 청산'은 되고 '민생 파탄'은 안 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