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제특허 출원 수가 사상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지난 7일(현지 시각) 발표한 '2019년 국제특허 출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5만8990건의 특허를 출원해 1위를 차지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79년부터 40년 연속으로 1위를 지켰던 미국(5만7840건)은 처음 2위로 떨어졌다. 국제특허는 특허협력조약(PCT·Patent Cooperation Treaty)에 따른 제도로, 이 조약에 가입한 어떤 국가에 출원해도 전 세계에 출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도록 한 것이다. 국가·기업·대학의 기술력이나 국제화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된다.

3~5위는 일본·독일·한국으로 2018년과 순위가 같았다. 중·미·일의 국제특허 출원 수가 각 5만건대로 3강(强), 독일(4위·1만9353건)과 한국(5위·1만9085건)이 2중(中)을 이루는 구도다.

중국의 국제특허 출원은 1999년만 해도 276건에 불과했지만 20년 만에 200배로 늘었다. 중국은 최근 5G(5세대 이동통신)·드론·인공지능(AI)·재생의료 등의 분야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프랜시스 거리(Francis Gurry) WIPO 사무총장은 보고서 발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식재산권이 세계 경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면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은 기술 혁신의 중심이 세계의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세계 국제특허 출원 건수는 2018년보다 5% 증가한 26만5800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중국 화웨이, 3년 연속 기업 1위

개별 기업별로는 중국 최대 통신기기 업체인 화웨이가 3년 연속 선두를 지켰다. 화웨이의 국제특허 출원 수는 4411건으로, 2위 미쓰비시전기(2661건)나 3위 삼성전자(2334건)보다 2배 가까이 더 많았다. 화웨이의 2019년 연구개발비는 1317억위안(약 23조원)으로 전년보다 30%가량 증가했다. 5G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대기업 오포(OPPO)는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 개발에 집중하면서 전년 17위에서 5위로 약진했다.

이 외에도 BOE(6위) 핑안테크놀로지(8위) 등 중국 IT 기업이 톱 10 기업 중 4개를 차지해 압도적인 강세를 보였다. 나머지 톱 10 기업은 한국만 2개(3위 삼성전자, 10위 LG전자)였을 뿐, 일본(2위 미쓰비시전기)·미국(4위 퀄컴)·스웨덴(7위 에릭손)·독일(9위 보쉬)이 각각 1개씩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일본, 특허 출원 톱 50 기업 최다 보유

최상위권인 톱 10에서는 중국이 독보적이지만, 차상위권인 톱 50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중국을 눌렀다. 일본은 2위 미쓰비시전기를 비롯, 파나소닉(12위), 소니(13위) 등 16개 기업을 톱 50위에 포진시켰다. 중국은 13개로 2위였고, 3~5위는 미국(10개), 독일(5개), 한국(3개) 순이었다. 특히 미쓰비시전기는 5년 연속 일본 기업 1위, 6년 연속 세계 톱 10을 유지했다. 기존의 전장·전력반도체 분야뿐 아니라 IoT(사물인터넷)나 인공지능(AI) 기술을 사용한 솔루션 분야의 특허 출원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의 강점은 특허 출원 기업이 자동차·전장·이미지센서·화학·AI·IoT·통신 등 각 분야에 고르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전장·커넥티드카 분야만 봐도, 미쓰비시전기를 비롯해 덴소(19위), 혼다(29위), 히타치오토모티브(33위) 등 4개가 포진해 있다. 올림푸스(35위) 같은 광학 분야가 있는가 하면, 무라타(28위)·옴론(49위)처럼 전자부품 전문 기업, 후지필름(16위)처럼 사진필름 산업에서 바이오·헬스로 업종 전환한 기업도 눈에 띈다. 반면 5G 등 첨단통신 분야는 중국·한국에 비해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국·한국의 톱 50 기업들이 5G·디지털통신 분야에 몰려 있다는 의미도 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더 치열해질 듯

중국이 국제특허 출원국 1위 자리를 빼앗음에 따라,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WIPO 사무총장 선거에서도 미국은 유럽·일본에 압력을 가해 유력했던 중국인 후보자 당선을 저지한 바 있다. 중국의 지식재산권 탈취 행위를 맹비난 중인 미국 트럼프 정권은 중국인 WIPO 수장이 탄생할 경우 지식재산의 중요 정보가 중국으로 흘러들어 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중국은 지식재산 강국을 선언하며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 중이다. 중국 정부는 첨단산업 정책인 '중국 제조 2025'를 내세워 자국 업체의 연구개발 분야에 보조금을 집중 투입했다. 작년 초에는 중국 대법원에 지식재산권 분쟁 전문 분과를 신설, 지식재산권 관련 국제 소송전에도 대비하고 있다. 세계 유력 스타트업에 대한 중국 기업의 출자나 매수도 급증했다.

거리 WIPO 사무총장은 "중국의 성공은 중국 지도자들이 깊은 전략을 세워 혁신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서양 경제 체제보다 보조금을 더 많이 사용했고, 그 효과가 특허 부문에서 나왔다는 것은 자명하다"며 중국식 모델이 정부 주도형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고효율 경제 체제의 훌륭한 사례"라면서 "완전히 다른 모델인 미국과 중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결론날지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한국, 특허 국제출원 증가율 12.8%로 1위]

한국은 작년 국제특허 출원 수가 2018년보다 12.8% 늘어, 상위 10위권 국가 중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2위는 중국으로 전년보다 10.6% 증가했다. 톱10 국가 가운데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었다.

한국의 국제특허 출원 수는 1만9085건으로 5위였다. 4위 독일(1만9353건)보다 268건 모자랐다. 그러나 작년 독일의 출원 수는 2018년보다 오히려 2% 줄어들었다. 따라서 한국이 현재 증가율을 유지한다면, 올해 독일을 제치고 4위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국제특허 출원 톱50 기업에 삼성전자(3위), LG전자(10위), LG화학(11위) 등 3사를 올렸다. 삼성전자는 3계단(2018년 6위→2019년 3위), LG화학은 무려 9계단(20→11위)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5G(5세대 이동통신)와 반도체 분야, LG화학은 차량용 리튬이온배터리 등의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결과로 분석된다. LG전자는 2계단(8위→10위) 하락했다.

한편 대학별 국제특허 출원 순위에서는 서울대가 9위(136건)로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톱10에 올랐다. 일본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도쿄대(12위·119건)보다도 높았다.

톱25에는 서울대를 포함해 한양대(14위), 카이스트(19위), 고려대(22위) 등 4곳이 올랐다. 한양대(15→14위)가 1계단, 고려대는 4계단(26→22위) 상승했다. 서울대(8→9위)는 1계단, 카이스트는 6계단(13→19위) 하락했다.

국제특허 출원 대학 1위는 미국 캘리포니아대(470건)였다. 2~5위는 칭화대(265건·중국), 선전대(247건·중국), MIT(230건·미국), 화난이공대(164건·중국)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