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국희 사회부 기자

내비게이션 제조사를 운영하던 지모(55)씨는 사기·횡령 전과 5범이다. 확인된 것만 그렇다. 한 회사의 31억대 주식을 횡령한 혐의로 2015년 징역 4년 실형을 받았다. 법원은 "피해 회복 노력을 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해 엄벌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2016년에는 7000만원대 다른 사기로 징역 8개월을 더 받았다. 2014년 2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춘천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석방 몇 달 뒤 지씨는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를 찾아갔다. 그는 수감 기간 목격했다는 검찰 내부 비리를 제보했다. 뉴스타파는 이를 토대로 지난해 '죄수와 검사'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로 언론상을 받은 뉴스타파 측은 수상 소감에서 "지씨는 정의(正義)에 대한 매우 특별한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씨의 사기 피해자들은 혀를 찼다.

최근 8년간 아들을 호주로 유학 보낸 지씨는 지난달 법원에서 파산·면책 선고를 받았다. 그는 서류에 암 보험을 전 재산이라고 썼다. 월 5만2660원 보험료는 지인들이 내준다고 했다. 그런 지씨는 2억원대 또 다른 횡령 혐의로 지난 6일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씨는 복역 중이던 2014년 사기 피해자에게 편지를 보내 "자본주의 자체가 큰 틀의 사기판"이라는 지론을 폈다. 그는 MB정권 때부터 '명까교'라는 모임의 '교주'로 활동하며 보수 진영에 적대감을 표출해왔다. 뉴스타파가 '제보자X'라는 별칭을 붙여준 뒤 그는 PD수첩, 김어준 라디오에 나와 '정의의 사도' 행세를 했다.

그는 최근 MBC에 채널A 기자가 '윤석열 최측근' 검사장과 결탁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비위를 캐려 했다는 '검·언 유착' 의혹도 제보했다. 지씨는 자신이 '제보자X'라는 건 감추고 채널A 기자와 접촉해 "검찰과 교감이 되느냐"는 것부터 물었다. 기자는 취재 욕심에 검찰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지씨는 휴대전화 두 대로 모든 대화를 녹음했다. 기자가 검찰을 담당했던 기간만큼 징역을 살며 검찰 치부를 목격했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지씨는 "검찰을 잘 모른다"는 투로 진술을 유도했다. MBC는 '검·언 유착' 실체는 검증 않고 지씨가 준 녹취록 중 유리한 부분만 골라 방송했다. 전체 과정을 짚어 보면 보수 진영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증오했던 지씨의 의도가 곳곳에 드러난다. 진실은 가려질 것이다.

뉴스타파의 '죄수와 검사' 시리즈를 이번에 읽어 봤다. 지씨를 영웅시 할 필요까진 없었다. 지씨 사기의 피해자는 "윤석열을 잡겠다는 목표 하나로 사기꾼까지 동원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 것 아니냐"고 했다. 뉴스타파와 MBC는 지씨 정체를 밝힌 본지에 "왜 메신저를 공격하느냐"고 한다. 메신저가 사태의 본질을 오염시켰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씨의 범죄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를 정의롭다고 추켜세우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