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의원을 지낸 김덕규(79·사진) 전 국회부의장이 9일 오후 2시 44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전북 무주 출생인 고인은 여야를 아우르는 인맥으로 '마당발'로 통했다. 또 서울 중랑을에서만 4선을 하며 지역구 관리를 철저하게 한 성실파로도 유명했다.
여객버스 운전사인 아버지의 7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무주중,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잠시 무주 안성면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어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 한일협정 체결 반대 운동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촉구 시위 등을 벌여 세 차례 투옥됐다.
1967년 신민당 재야파로 입당했고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 연설원으로 전국을 순회했다. 신민당 중앙상무위원을 거쳐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한당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1986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상임운영위원으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13, 14, 16, 17대 서울 중랑을에서 당선됐다.
민주당 사무총장, 제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 집행위원장, 열린우리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 등을 지냈다. 17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과 국회 행정경제위원장,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도 지냈다.
활발한 지역구 활동을 했으며 중랑을 상습 침수 지역에 주택을 얻어 가족들과 함께 입주, 피해를 보는 주민들과 동고동락한 일화 등이 유명하다. 유족은 아내 이정이씨와 김범진(포스코 팀장)·김욱진(서울시립대 교수)씨 등 2남, 며느리 이숙연·김태연(충남대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1일 9시. (02)207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