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 이곳의 중앙에 남성 패션 브랜드 '웅가로(ungaro) 셔츠' 팝업스토어가 자리 잡고 있다. 20대로 보이는 남성들이 신기한 듯 매장에 설치된 '디지털 키오스크'를 조작해 보고 있었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같은 음식점에서 무인 주문을 위해 설치되고 있는 키오스크가 왜 패션 브랜드 매장에 있는 것일까.
◇"7억 가지 맞춤 셔츠 가능합니다"
웅가로는 지난해 12월 타계한 프랑스 패션계의 거장인 디자이너 에마뉘엘 웅가로의 남성 패션 전문 라이선스 브랜드다. 그의 이름 앞에는 '색채의 마술사' '관능미의 화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국내 패션 업체인 이센스는 2008년부터 웅가로의 '한국 마스터 라이선스(상품 제작·유통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회사로 타이, 벨트, 지갑 등 잡화에 이어 올해 셔츠 전문 브랜드를 시작했다. 전국 백화점 35개에 웅가로 셔츠를 입점시켰다.
경쟁이 치열한 남성 셔츠 시장에서 웅가로 셔츠는 '스마트 맞춤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고급 맞춤 정장숍에 가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맞춤 셔츠의 문턱을 확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웅가로 셔츠는 롯데백화점 상품본부와 손잡고 맞춤 패션 설루션 업체인 '멋들어진'의 시스템을 백화점 실정에 맞게 키오스크로 개발했다. 고객은 매장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이용해 셔츠 원단은 물론 소매·단추의 모양과 색깔 등을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다. 머릿속에 그리는 셔츠의 모습이 키오스크 화면에 즉각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웅가로 셔츠를 운영하는 이센스의 최성진 대표는 "구김이 안 가게 하는 등의 품질은 기본"이라며 "최대 7억9000만 가지의 셔츠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을 제외한 다른 매장에선 키오스크 대신 태블릿PC를 이용해서 스마트 맞춤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파리·런던에서도 원하는 셔츠를 주문
코로나 사태로 패션 업계를 비롯한 유통가에선 사람 간 접촉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언택트(untact) 소비'가 일반화하고 있다. 아직 오프라인 위주일 수밖에 없는 고급 패션 브랜드로선 위기가 될 수밖에 없는 트렌드다. 하지만 웅가로 셔츠는 키오스크 시스템을 통해 오히려 언택트 트렌드를 기회로 보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키오스크를 통해 사이즈를 한번 등록해 놓으면 언제 어디서든 롯데백화점 온라인쇼핑몰에 접속해서 주문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셔츠를 구입할 때마다 번거롭게 매장을 방문할 필요 없이 내 몸에 딱 맞는 셔츠를 언제 어디서든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웅가로 셔츠 관계자는 "파리가 됐든 런던이 됐든 해외에 체류 중인 고객도 원하는 셔츠를 주문하고 받아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 맞춤 프로그램은 가상의 디자인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통상 맞춤 셔츠 가게에 가면 치수를 잰 뒤 제작 공장에 작업 지시서를 넘겨주고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웅가로 셔츠는 스마트 맞춤 프로그램에 생산공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주문 완료시 매장에서 바로 공장으로 작업 지시서가 넘어가고, 컴퓨터·스마트폰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내가 직접 디자인한 셔츠가 얼마만큼 제작되고 있는지, 또 언제쯤 받아볼 수 있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 상품본부 고재욱 정장·셔츠 바이어는 "고객들은 편리함뿐 아니라 비스포크로 대변되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원하는 추세"라며 "웅가로 셔츠의 스마트 맞춤 시스템이 해외 주재원이나 유학생뿐 아니라 나만의 셔츠를 원하는 남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