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가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6년 만에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각종 규제 강화로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둔화됨에 따라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일부 처분했거나 증여를 한 결과로 보인다.

2일 하나은행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자사 PB(프라이빗뱅킹) 고객 39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부터 1개월간 조사한 결과를 담은 '2020 한국의 부자 보고서'를 펴냈다. 하나은행에 맡긴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PB 고객들이 설문 대상이었는데, 이들의 총자산은 평균 160억원에 달하고 연소득은 평균 4억7700만원이었다. 평균 나이는 68세. 다만 이번 조사엔 코로나 사태에 따른 향후 경기 전망과 그에 따른 자산 전략 변화 등은 담기지 않았다.

◇부자들 부동산 비율 줄었지만, 절반은 '일단 갖고 있겠다'

부자들은 2019년 기준으로 자산의 50.9%를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2013년에만 해도 44%였던 이 비율은 매년 꾸준히 늘어 2018년 53%까지 10%포인트 가까이 늘었지만, 그 추세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꺾인 것이다.

부자들은 거주용 주택(30%)보다는 상업용 부동산(48%) 보유 비율이 높았다. 자산이 많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상업용 부동산을 많이 보유했다. 자산 100억원 이상 부자들은 상업용 부동산이 전체 부동산 자산의 55%를 차지했다.

그래픽=김성규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조사 대상 부자들이 올해 부담할 종합부동산세는 전년 대비 평균 48% 정도 급증할 걸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일단 부동산을 처분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응답자가 51.3%로 가장 많았고, '추이를 봐서 결정하겠다'는 사람도 29.7%였다. '매각했다'거나 '매각하겠다'는 응답자는 9.1%뿐이었다. 40대 이하 젊은 부자들은 부동산 매입 의사가 다른 연령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22%로 나온 것도 특징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안성학 연구위원은 "코로나 사태 이후 부자들의 부동산 투자 의사가 다소 변경됐을 수는 있지만, 5년 뒤를 내다보고 한 응답이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잣돈 41세에 마련해 65세에 자식에게 물려줘

부자들은 지금의 부(富)를 일군 시드머니(종잣돈)를 어떻게 마련했을까. 조사 결과 사업소득으로 마련했다는 응답이 32.3%로 가장 많았고, 근로소득은 18.7%였다. 이에 비해 상속 및 증여(25.4%), 부동산 투자(18.2%) 등 불로소득을 통해 마련한 경우는 43.6%였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보다 자기 손으로 부를 일군 경우가 더 많았다는 의미다. 다만, 복수응답까지 포함하면 부동산 투자가 61.5%로 종잣돈 마련 수단 중 가장 많이 꼽혔다.

이들은 평균 41세에 종잣돈을 마련해 재산을 불린 다음 65.2세에 자녀들에게 증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때 증여를 받는 자녀의 평균 나이는 34.9세였다. 현재 사업체를 경영하는 부자들이 자녀에게 가업을 승계하겠다고 명확히 의사를 밝힌 경우는 43.6%에 그쳤다. 40%는 승계하지 않겠다고 했고,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경우도 16.4%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