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논설위원

정말 중국 공장이 덜 돌아가면서 공기가 좋아진 것일까. 작년 이맘때 미세 먼지 때문에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그게 답답해 바람 불기를 기원하는 기풍제(祈風祭)라도 올려야 하나 하는 글도 썼다. 그런데 요즘 미세 먼지 수치는 예년처럼 치솟지 않는다. 남산에 산책하러 가서 한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작년 이맘때는 분명히 그 맛이 달랐을 것이다.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3000명 넘게 숨졌지만, 미국 스탠퍼드대에 따르면 대기오염이 줄면서 최다 7만5000명이 조기 사망을 면할 것이라고 한다. 전염병이 돌아서 모든 것이 나빠진 것만은 아니다.

두 달가량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도 답답하다는 불평을 할 수가 없다. 미세 먼지 때는 나를 위해 마스크를 썼지만 지금은 타인을 위해서도 쓰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주민 70여 명 사는 남해의 작은 섬을 찾아 홀로 산길을 걷는데 마주 오던 할머니가 "마스크 왜 안 써!" 하고 호통쳤다는 얘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할머니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으면서. 섬을 지키려는 할머니에게 바이러스의 전염 경로를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마스크는 기능성 제품이라기보다 드레스 코드에 가깝다. '나는 이 재난을 극복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는 표지다. 앞으로 우리도 독감 같은 전염성 질환에 걸렸을 때 마스크를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을 성싶다. 서울의 한 회사에서 5년간 결핵 환자 190명이 쏟아진 적이 있다. 결핵 환자 한 명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회사를 활보한 대가였다. 지금처럼 마스크가 친숙해져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또 달라진 것은 사람들의 기침 예절이다. 나부터도 이전엔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그저 손으로 입을 가리는 정도였는데, 이제 옷소매로 입을 틀어막는 게 습관이 됐다. 코로나 이전에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뒤통수에 대고 산탄총 쏘듯 재채기하는 사람도 봤지만 이제 그런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불필요한 시선을 피하려고 기침을 참는 사람이 많아졌다. 코로나가 끝나면 공연장에서 퍼지는 헛기침도 사라졌으면 한다. 그리고 이참에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한쪽 콧구멍으로 체액을 발사하는 묘기도 제발 그만 봤으면 좋겠다.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손을 씻지 않는 사람도 거의 사라진 듯하다. 오히려 화장실에서 손만 씻고 나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손을 씻는 것 역시 남을 위하는 행동이다. 씻지 않은 손으로 만지고 다니는 손잡이와 버튼과 서랍들을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전에도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온 국민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많은 것을 복습하고 있다.

무엇보다 좋아진 것은 사회적 거리에 대한 인식이다. 사실 사회적 거리라는 말은 학술 용어이고 세계보건기구는 '물리적 거리'라는 말을 권장한다. 용어가 어떻든 좀 떨어져서 걷고 줄 설 때도 좀 떨어졌으면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비로소 떨어지게 됐다.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회적 거리를 희망하는 것은 욕심에 가깝다. 그러나 뒷사람 쇼핑 카트에 발뒤꿈치 찍히고 뒷사람 숨소리 들으며 현금 지급기 버튼을 눌러본 경험을 했다면, 사회적 거리라는 개념이 생긴 것 자체가 반갑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예전과 같더라도 역병을 겪지 않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인간과 문명이 한낱 미생물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깨닫는 중이다. 남을 배려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긴 고난이 결국 끝났을 때, 어떤 것들은 이전보다 나아져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많은 것을 앗아가면서 어떤 것은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