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임종석 당시 전대협의장이 임수경씨를 북에 보낸 혐의로 경희대에서 검거돼 구속 수감되는 모습(사진 왼쪽). 1989년 8월 20일 밀입북 후 돌아와 경찰에 구속돼 연행되고 있는 임수경씨의 모습.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이 1일 외교부에 ‘임수경 밀입북 사건’ 외교문서를 공개하라고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고 2일 밝혔다. 외교부는 해당 건이 “접수됐다”고 했다.

한변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제3조에 의하면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1989년 당시 최대 현안이던 ‘임수경 방북’과 관련된 내용이 거의 통째로 빠졌다”고 했다.

한변은 “심지어 임수경 방북 이후 국내 언론 보도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 담긴 외교문서도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다”며 “외교부 당국자는 비공개 이유로 ‘개인 관련 문서’, ‘89년 이후에도 관련 내용이 있어서’ 등을 들었으나 이는 정보공개법 제9조가 규정하는 ‘정보비공개’의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음이 자명하다”고 했다.

한변은 “현 정부는 유난히 북한과 관련해 문제 될 만한 일은 꺼리는 정책 기조를 보이는데 이번 외교문서 공개 과정에서도 이런 기조가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며 “국민은 ‘임수경 방북’과 관련해 당시 전대협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으며 어떤 발언과 행적이 존재하는지에 관해 헌법상 알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오는 4월 총선에서의 정치적 유·불리에 의해 좌우될 것이 아니다”라며 “외교부는 ‘임수경 방북’과 관련돼 누락된 자료를 포함한 모든 정보를 서면으로 조속히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작성된 지 30년이 지나 기밀 해제된 1989년도 외교문서 1577권(약 24만쪽)을 공개하면서 당시 최대 관심사인 '임수경 밀입북 사건'을 비공개해 논란을 자초했다. 외교부는 장문의 보도 자료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 신장과 외교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외교문서를 적극 공개한다"면서도 이 사건을 비공개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임수경 밀입북 사건을 비공개한 데에 대해 "임수경 방북은 1989년 6월 있었지만 그 이후 후속 상황이 있어 비공개한 걸로 안다"고 했다. 1989년 당시 종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던 사건이라 일단 비공개 결정했다는 취지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동구권 국가들과의 수교 비화 등 1989년 시작돼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사안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외교부 브리핑에서도 논란이 됐다. 질문이 쏟아지자 외교부 당국자는 "비밀 방북했는데 외교문서가 있을까? (문서가) 생성됐나 모르겠다"고 했다. 문서가 없을 수도 있다는 투였다. '없다는 건가, 있는데 공개 안 한다는 건가'란 후속 질문에 이 당국자는 "(임수경이) 방북해서 서울 돌아왔지 않느냐. 외국 정부와 나눈 대화가 문서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외교부의 부실한 브리핑 직후 비공개 처리한 '임수경 밀입북' 문건이 160여쪽에 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당국자는 이날의 최대 관심사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았거나,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이다.

이후 외교부는 "개인 신상에 관한 내용이라 비공개했다"는 해명도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지낸 공인에 대해 '개인 신상' 운운한 것 자체가 궁색한 변명이란 지적이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작년 외교부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에 대한 문서를 공개하지 말았어야 한다. 취재진 사이에선 "외교부가 종일 말 돌리기만 한다"는 말이 나왔다.

1989년 한국외대 4학년이었던 임 전 의원은 전대협 의장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로 그해 6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평축)에 전대협 대표로 참석했다. 상식적인 '서울→베이징→평양' 경로가 아닌 '서울→도쿄→서베를린→동베를린→모스크바→평양'의 우회 루트를 이용했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 해외 공관들이 임수경 동선을 추적·파악한 흔적, 외교관들의 대외 첩보 수집 및 여론전 관련 기록들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년이 된 임수경과 임종석의 모습.

외교부는 이 사건과 직결된 문서는 감췄지만, 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문서는 일부 공개했다. 주로 북한의 우방인 중남미·아프리카 정부 관리들이 임 전 의원을 구속한 한국 정부를 비방했다는 내용이다.

전직 정부 고위관료는 “정부가 ‘임수경 밀입북과 그의 구속 건’과 관련해 북한에 유리한 측면은 공개하고, 오히려 당시 한국 외교관들이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해당 사건의 불법성과 이에 따른 법적 조치에 대해 충실히 설명한 내용의 외교문서는 비공개 처리한 듯하다”면서 “형평성과 공정성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에 저촉되는 처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