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4월말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하기까지에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최고로 통하는 전염병 예방·치료 전문가 2명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앤서니 파우치(Fauci) 미 국립 앨러지·전염병연구소장(79)과 데보라 벅스(Birx) 백악관 테스크포스 조정관(64). 두 사람은 1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학교 폐쇄·대규모 집회 금지·여행 제한 등을 해도, 10만명에서 24만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매우 힘든 2주(나중에 3주로 수정)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제(師弟)지간인 트럼프의 최고 전염병 정책 전문가 2인
거의 매일 있는 트럼프의 백악관 코로나 브리핑에서, 트럼프 곁에 서는 의료정책 조언가인 두 사람은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제(師弟)간이기도 하다.
파우치 박사는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전염병연구소장을 맡은 이래 지금까지 6명의 대통령 밑에서 일한 미국 내 전염병 예방·치료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에이즈와 결핵, 각종 호흡기 질환, 말라리아·에볼라(ebola)·지카(Zika) 바이러스 등의 대책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편, 데보라 벅스는 1980년대 미 육군 군의관 출신으로 전염병 전문의로서 파우치의 연구실에서도 배웠다. 2014년 오바마 행정부 때 글로벌 에이즈 확산 대응 태스크포스를 이끌었고, 미 국무부의 글로벌 보건 외교특사(대사)다. 지난 2월 출범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백악관 코로나 태스크포스에 그의 '오른팔'로 발탁됐다.
◇ '팩트 전달'에 충실한 스승 vs. 트럼프 '심기' 의식하는 제자
두 사람 모두 전염병 예방·치료의 대가(大家)로 인정받지만, 코로나 브리핑에서 재선(再選) 등 정치적 목적을 담아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펴는 트럼프 발언에 대한 대응에선 매우 대조적이다. 파우치가 종종 언론 인터뷰에서 팩트(facts)를 퉁명스럽게 수정(修正)하는 반면에, 벅스 대사는 트럼프의 분노를 사지 않으려고 말을 조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부활절(4월12일)까지 미국 사회를 ‘정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파우치는 3월27일 미 공영라디오 (NPR)과 CNN 인터뷰에서 “대책을 완화하는 시기는 바이러스가 정하지, 우리가 정하지 않는다. 데이터를 봐야지, 맘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반면에 벅스는 트럼프가 백악관 브리핑에서 “언제쯤 브리핑룸이 (예전처럼) 화난 기자들로 가득 찰 것이냐”고 묻자,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와 이 질병에 대해 지금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파우치는 3월22일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트럼프와는 달리) 나는 결코 ‘차이니스 바이러스’란 말을 쓰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트럼프가 쏟아내는 팩트가 아닌 주장에도, 파우치는 “내가 마이크 잡고 그를 깎아 내릴 수는 없고,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고 다음에 수정하면 되지”라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클로로퀸(chloroquine)이나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 같은 말라리아 치료제를 ‘특효약’인 양 발표했을 때, 파우치는 기자들의 질문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이 3월 중순 훨씬 이전에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취했으면 지금쯤 희생자가 줄지 않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두 사람의 답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벅스 대사는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제 감염됐는지 광범위한 진단이 없었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했지만, 파우치는 “이미 바이러스가 당시 확산됐었다면, 대답은 아마 예스(yes)”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와 민주당에선 파우치를 더 신뢰하지만, 트럼프 골수 지지자들은 트럼프 발언에 종종 투박하게 어깃장을 놓는 파우치를 ‘적(敵)’으로 여긴다. 트럼프의 재선을 막으려는 연방정부 내 기득권 세력인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일부라며, “과도한 공포를 조장한다”고 비난한다. 그들은 “벅스 대사야말로 진실을 말하고, 코로나에 대한 집단적 공포(hystery)를 진정시킨다”고 칭송한다. 그러나 파우치 박사는 3월31일 잡지 배너티 페어 인터뷰에서도 “나는 이념이 없다. 내게 이념은 보건(health)”라고 말했다.
◇벅스는 왜 공신력을 무너뜨리며, 트럼프 비위 맞출까
하지만 공화·민주 행정부에서 에이즈 전선(戰線)을 지휘하면서 전문성을 인정 받았던 벅스 대사는 코로나 조정관이 된 이래, 일련의 트럼프 칭송을 쏟아내면서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13일에는 "대통령 덕분에, 미 50개 주 전체에서 감염 테스트를 실시할 수 있게 됐다"고 찬사를 늘어놓고, 26일 방송 인터뷰에선 "오랜 비즈니스 경험에서 비롯한 대통령이 데이터 분석·통합 능력은 이번 의료 사안을 논의하는 데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트럼프는 2월26일에도 "곧 감염 건수는 0에 근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지난 2월 많은 이가 임명을 환영했던 벅스 대사가 트럼프의 은총(grace) 아래 머물기로 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3월29일 백악관 오벌오피스(Oval Office·대통령 집무실)에서 “최대 24만 명이 죽을 수 있다”는 예측 모델을 제시했고, 트럼프는 이를 수용했다. 백악관 참모들은 기존 거리두기 조치가 끝나는 3월31일부터 15일만 더 연장하자고 했지만, 두 사람은 ‘한 달’을 고집했고 결국 관철시켰다. 일부 보건 전문가들은 “벅스 대사가 전문가들의 권고에 정책적 의지를 담아내고,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균형을 맞추는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며 그를 동정하기도 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트럼프의 귀를 잡은 파우치 vs. 마음을 잡은 벅스
월스트리트저널은 1일 "파우치 박사는 공개적으로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하면서도 그의 귀를 잡는 능력을 소유했다"고 평했다. 파우치가 트럼프에 이견(異見)만 내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는 지난달 31일 CNN 방송 인터뷰에서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를 포기하면 피할 수 있는 고통과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난다고 분명히 밝혔고, 대통령은 데이터를 보자 곧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권고안을 내면, 대통령은 수용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과의 '갈등설'을 잠재우기 위해, 3월24일 "토니(앤서니)는 탁월하고, 우리는 잘 어울린다"고 그를 두둔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실 직언(直言)'보다는, '부드러운 말'에 마음이 쏠리는 법. 뉴욕타임스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파우치의 무뚝뚝한 답변보다는 벅스의 접근 방식을 선호하며, 벅스가 대통령의 참견이나 의학적 근거가 없는 정보 제공에 대해 좀 더 인내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기자 브리핑에서도 "굳이 마스크를 구하려 애쓰지 말고, 스카프를 대신 쓰라"고 했다. 파우치 박사는 "그런 방식은 앞으로 태스크포스가 더 활발하게 토론해야 할 사안"이라고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