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 아세안(ASEAN) 등을 중심으로 전 세계 66개국에서 8만6040명의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4·15 총선 재외 투표가 1일 시작됐다. 이번 투표는 지역에 따라 오는 6일까지 진행된다. 그러나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에서 선거가 취소돼 당초 투표하겠다고 신청한 17만1959명 가운데 8만5919명(50.0%)은 아예 투표를 할 수 없게 됐다. 제도상 귀국 투표나 타 지역 투표가 가능하지만 극소수에 그칠 전망이다.

1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한국대사관에서 재외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이번에 재외국민 안전을 위해 세계 176개 공관 가운데 86곳의 선거 사무를 중단시켰다. 이에 따라 전 지역 또는 일부 지역 투표가 무산된 국가가 56개국에 달했다. 미국의 경우 워싱턴DC 주미대사관과 LA총영사관 등 전체 13개 공관 4만562명의 투표가 모두 취소됐다. 캐나다(선거인 8313명)와 아르헨티나(2172명) 전역, 브라질 내 최대 상파울루총영사관(2277명)에서 투표가 불가능해졌고 독일(5939명), 프랑스(2839명), 영국(2270명), 이탈리아(1126명), 스페인(733명) 등도 투표가 전부 취소됐다.

반면 중국은 선거인 151명인 우한총영사관 한 곳에서 선거가 취소된 것을 제외하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칭다오 등 주요 도시에서 2만398명이 투표에 참가할 예정이다. 일본도 선거 취소 없이 2만1957명이 투표한다. 아세안 10국 가운데서 필리핀(3818명)과 말레이시아(1746명)는 선거가 취소됐지만,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등 8개국 1만5838명은 투표가 가능하다. 중국, 일본, 아세안 유권자가 전체 재외 선거인의 3분의 2 이상(67.6%)으로, “동(東)아시아 주도의 재외투표”란 말이 나온다.

중앙선관위는 미국의 경우 국무부가 외교 전문을 통해 선거 취소에 관한 의견을 우리 측에 먼저 보내왔으며, 이에 우리 외교부 관할 공관장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거사무 중단을 결정했다고 했다. 선관위는 “(투표 취소국들에서는) 전 국민 자가 격리와 전면 통행금지, 외출 제한 등의 조치가 시행되고 있고 위반 시 벌금이나 구금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등 강력한 외출 제한 조치를 취한 주(州)들의 경우에도 ‘관공서 방문’ 등 예외적인 경우는 통행을 허가하고 있어 전 지역 투표 취소까지 필요했는지 논란도 일고 있다. 선관위는 이번에 사무 위임 전결 규정에 따라 위원회 의결 없이 권순일 위원장이 직권으로 선거사무 중단 결정을 내렸으며, 각 국가별 투표 취소에 대한 상세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각국이 선거 취소를 요구한) 외교 전문은 대외비여서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른 여야의 유불리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엇갈렸다. 재외선거는 전통적으로 진보표 강세였다. 2012년 대선 재외투표에서 문재인 후보(8만9192표, 56.7%)가 박근혜 후보(6만7319표, 42.8%) 보다 2만표 넘게 더 받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미국은 역대 선거에서 진보 정치 집단이 우세했는데 이번에 투표가 전부 취소됐고, 문재인 정부 외교 정책에 자존심이 깎인 중국과 일본 유권자들에게는 투표권이 주어졌다”며 “여당이 불리하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최근 조국 사태와 정책 실패 등으로 재외 유권자의 판단이 변했다는 주장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최근 조국 사태 때 영미권 교민들 사이에 상당히 정부에 비판적인 흐름이 감지됐었다”며 “결국 투표장에서는 ‘정권심판론’이 작동할 수 있는데 재외투표 숫자 자체가 크게 줄어서 여당이 유리해졌다고 본다”고 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선관위의 재외선거 취소 결정에 “재외국민이 투표를 못하게 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는 통화에서 “보수 성향 유권자가 투표를 못하게 만든 선관위 결정으로 인해 불리해진 여건”이라며 “하지만 문재인 정부 굴욕 외교와 실정을 재외국민들이 반드시 표로 심판해줄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재외선거 취소에 대해 “선거사무 중단이 너무나 안타깝고, 안전한 투표가 이뤄져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통화에서 “재외투표가 더 많이 이뤄졌다면 우리가 유리했겠지만 교민의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투표의 유불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