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정립한 곳은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실이 아니었다. 흑사병으로 대학 휴교령이 내려진 탓에 2년간 강단을 떠나 시골집에 있을 때였다. 뉴턴은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진 발견의 전성기”라고 회고했다. 전염병이 강제한 한 천재의 자가 격리가 인류 문명에 큰 선물을 안긴 셈이다.

▶큰 전염병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은 흑사병은 살아남은 농노의 발언권을 높여줌으로써 봉건제 붕괴를 촉발했다. 농노 이탈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상업이 발달했고 근대 자본주의 토양이 만들어졌다. 1920년대 미국에선 스페인 독감 창궐이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노동력 감소를 벌충하려고 설비 투자를 급히 늘린 덕에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글로벌 산업 패권국이 됐다는 것이다.

▶코로나발(發)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 달 이상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있다. 대학생은 강의실 대신 집에서 원격 강의를 듣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등록금이 아깝다'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재택근무 중인 직장인은 '그럭저럭 적응이 된다'는 느낌과 더불어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신도들이 온라인으로 종교와 교파를 넘나들면서 '설교(강론) 쇼핑'을 다닌다는 소식도 들린다. 노인들도 온라인 배달 음식 주문에 익숙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선 된장찌개 하나를 여러 사람이 나눠 먹는 풍습은 '이제 끝'이란 얘기도 나온다.

▶아마존, 제이피모건 같은 글로벌 기업에선 '화상회의'의 효용을 재발견하고, 직원 출장 금지령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비즈니스 출장 덕에 연 1조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항공·호텔업계로선 끔찍한 소식이다. 트위터, 소니 같은 기업에선 직원 대다수가 재택근무를 해도 업무가 탈 없이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 직원 1인당 연간 5000달러에 이르는 사무실 임차료를 줄이려 한다. 교육학자는 이번 기회에 교육과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에듀 테크'를 광범위하게 도입하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지구촌은 과거와 달라져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이 나온다. 기업들이 재택근무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기초로 스마트 워크(smart work) 시스템을 장착하면 직장인들의 삶은 혁명적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구태의연한 관행과 낡은 질서가 혁신되기도 하겠지만, ‘사회적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