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주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 정당’이라는 더불어시민당의 지도부와 비례대표 후보들이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다녀왔다. 친문 세력의 ‘효자’라는 사실상 또 다른 위성 정당인 열린민주당도 이에 뒤질세라 그제 그곳을 방문했다.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노무현 마케팅이 시작된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평가 1위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오랫동안 부동의 1위였던 박정희 대통령은 2위로 밀려났다. 예컨대, 한국갤럽이 2019년 5월에 실시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조사 결과를 보면 노무현 32%, 박정희 23%로 나타났다. 15년 전인 2004년 5월 조사에서는 박정희가 48%로 압도적 1위였다. 이러한 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위성 정당까지 데리고 봉하마을로 갔을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에 대한 이러한 높은 선호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가난에 찌든 나라를 경제 개발로 일으켜 세운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비교할 때 노 대통령은 그 정도의 가시적 성과를 이뤘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노무현 정부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했고 국민소득도 2만달러를 넘어섰지만 이런 정도의 업적으로는 박정희 시대의 성취를 넘어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정치인 노무현이 주목을 받게 된 건 2000년 16대 총선 때부터였다. 당시 보궐선거로 당선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종로를 버리고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며 험지인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도 노무현은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무모한 도전을 했다. 이러한 '바보 노무현'에 감동한 이들이 노사모를 결성했고 이들은 2년 뒤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사람들을 노무현에게 끌리게 만든 건 공감할 수 있는 정치적 명분과 가치에 대한 타협하지 않는 태도였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지역주의 정치 청산이라는 그의 정치적 명분은 퇴색하지 않았다. 2005년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노 대통령은 '지역 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정을 한나라당이 받아들인다면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퇴임 후인 2010년 출간한 자신의 책 '운명이다'에서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을 회고하면서 '나는 지금도,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고 썼다. 재임 중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또 직무 수행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던 노 대통령을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이 그리워하게 된 건 이와 같은 정치적 가치와 명분에 대한 그의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이쯤에서 오늘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 제1 야당을 배제하고 밀어붙인 선거법 개정이 통과된 후 더불어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국회가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 등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 대다수 국민을 제대로 대변하는 민의의 전당으로 한 걸음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새로운 선거법은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선거가 다가오자 민주당은 그 스스로 위성 정당을 만들고, 거기에 사실상의 또 다른 위성 정당을 용인하면서 불과 몇 달 전 그들이 내세웠던 명분을 스스로 뒤집어 버렸다. 눈앞의 이익을 탐하느라 노 대통령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던 선거제도 개편을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다시 노무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가 외쳤던 정치 개혁에 대한 가치는 온데간데없고 권력에 대한 탐욕 속에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은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자주 이야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그 표현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오늘날 문재인 정부는 소수의 ‘자기편’끼리 자리와 혜택을 나누는 배타적이고 특권적인 집단이 되었고, 이번 선거를 앞두고 보여준 대로 민주당은 자기들의 기득권, 특권을 지키기 위해 반칙도 스스럼없이 행하고 있다. 과연 노 대통령은 ‘원 팀’으로 찾아온 더불어민주당과 위성 정당, 그리고 ‘효자’라는 또 다른 위성 정당을 지하에서 바라보면서 흐뭇해했을까. 권력에 도취하여 명분, 가치를 내팽개친 이른바 ‘진보 정치’의 끝이 어떨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