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비례대표 정당인 '열린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24일 확정 발표한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서 친(親)조국 색채가 선명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줄줄이 상위 순번을 차지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사정(司正)과 검찰 행정 등 법률적 문제를 다뤘던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조국 수호'에 앞장서온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열린민주당 앞 순번을 공천받은 것을 두고 비판이 커지고 있다. 최 전 비서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인턴 활동 확인서를 허위 발급해준 혐의로 기소까지 된 상태다. 그런데도 친조국을 앞세워 공천장을 거머쥔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과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이끄는 열린민주당은 이날 전(全) 당원 투표를 통해 비례 명부를 확정했다. 비례 명부 2번엔 최강욱 전 비서관이, 4번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배치됐다. 최 전 비서관은 2017년 변호사 시절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돼 다음 달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던 김 전 대변인은 '흑석동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한 달 만에 번복하고 열린민주당으로 옮겼다. 6번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 정책공약단 부단장을 맡았던 친여(親與) 인사다. 이번 공천 심사 과정에서 '음주 운전 전력'과 '아들의 한국 국적 포기' 문제로 논란이 됐다. 8번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은 조국 장관 시절 '1호 지시'로 검찰개혁추진단장을 맡았다. 열린민주당은 비례 5~6석을 확보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판을 받고 있는 최 전 비서관과 부동산 투기 문제로 민주당에서 사실상 '컷오프(공천 탈락)'된 김 전 대변인 모두 당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열린민주당은 일부 중앙위원이 주진형 후보의 음주 운전 전력 등을 문제 삼으면서 이날 전 당원 투표를 진행하게 됐다. 열린민주당 일각에선 "표면적으로는 주진형 후보 때문이지만, 친조국 인사만 상위에 배치되고 비(非)조국 인사는 뒤쪽으로 밀리면서 세(勢) 싸움이 벌어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손혜원 의원은 이날 "수정 여지는 없다"며 명단 확정을 밀어붙였다. 정치권에선 "논란에 휩싸인 현 정권 출신 인사들이 비례당을 통해 '우회 공천'을 받는 모양새"란 말이 나왔다. 미래통합당은 논평에서 "조국 수호자들이 전면에 배치된 것은 '오로지 내 편을 챙기겠다'는 뻔뻔한 행태"라고 했다.

시민당도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친여·친문 성향 인사들이 대부분인 비례 명부를 확정했다. 비례 명부 앞쪽에 친여 성향으로 분류되는 시민사회 인사들을 대거 배치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1~10번은 민주당에서 직접 선출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권 성향 인사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한다는 점에서 민주당에 불리하지 않다"고 했다. 시민당과 열린민주당 간 신경전도 이어졌다. 시민당 최배근 공동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열린민주당을 찍으면 (시민당 비례 명부) 11번부터 30번에 있는 민주당 후보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열린민주당 대신 시민당을 지지해달라고 한 것이다.

반면 손혜원 의원은 이날 '여권표 분산 우려'에 대해 "이분들(열린민주당 후보)이 국회에 들어가시면 결국은 누구를 위해 일하겠느냐"며 "국민이 안심하고 어느 쪽을 뽑아도 된다"고 했다. 여권에 비례당이 여러 개 있으면 전체 '파이'를 키우게 되며, 결과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결국 공조해 주요 법안 및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민주당 한 의원은 "당장 21대 국회 첫 국회의장 선출에서부터 열린민주당에 협조를 요청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20대 국회 초에도 민주당(123석)은 국민의당(38석)과 공조해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을 배출했었다.

이미 양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임명 등에서 공조할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최근 김의겸 전 대변인은 "(공수처 문제를) 원만하게 마무리지으려면 (공동 교섭단체 등) 방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당 우희종 공동대표도 "검찰 개혁 취지에 따른다면 총선 결과에 따라 (양당이 공동 교섭단체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