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 일본 나라(奈良)의 한 작은 사찰에 도둑이 들었다. 그는 사찰 소유의 조선 백자 달 항아리를 훔쳐 달아나려다 주지 스님에게 발각되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도둑은 달 항아리를 땅에 내던졌고 달 항아리는 300여 조각으로 부서졌다. 이후 3년간 보수 작업 끝에 원래 모습을 되찾아 현재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도공이든 예술가든 대개 형태가 온전한 그릇을 추구한다. 그런데 작가 이수경은 전혀 다르다. 10여 년 전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그건 충격이었다. 깨진 도자기 파편들을 이리저리 붙여 만든, 독특한 모양의 미술품이었기 때문이다. 도자기 공방에서 폐기한 조각들을 주워 와 이어 붙이며 작업한다. 완형의 아름다움보다 조각난 파편을 주목한 것이다. 작가는 여기에 '번역된 도자기'라 이름 붙였다.
우리나라엔 도자기 고장이 여럿 있다. 그 지역마다 도자기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대부분 전통 청자나 백자 그릇 형태를 하고 있다. 도자기 고장이니 당연히 도자기 조형물이어야겠지만 너무 익숙하고 예측 가능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과의 고장에 사과 형태 조형물이, 고추의 고장에 고추 모양 조형물이, 굴비의 고장에 굴비 모양 조형물이 있는 것처럼.
도자기 고장에 완형이 아니라 깨진 도자기 조형물을 설치한다면 어떻게 될까. 품격이 없다거나 비현실적 상상력이라거나 관광객 유치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혹평이 나올 것이다. 혹평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한 번만이라도 생각을 바꿔보면 좋을 것 같다. 낯설고 불편할지라도 그것이 사람들 기억에 더 오래 남을지 모를 일이다. 깨진 그릇은 온전한 그릇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온전한 그릇보다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한다. 저 그릇은 왜 깨졌을까, 우리는 왜 저 그릇을 깬 것일까, 저 그릇의 원래 모습은 어떠했을까. 무언가를 담아야 하는 것이 그릇이지만, 때론 깨져서 그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