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에 힘입어 국내 증시가 '반짝' 반등했지만, 여의도 증권가의 한숨은 잦아들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패닉장(場)'이 길어지면서 증권사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고 뒤숭숭한 상태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증시가 강세를 보일 때 고객 돈을 끌어모아 운용 중인 금융상품이 대규모 손실 위기에 처한 데다 야심 차게 추진하던 각종 투자 계획도 어그러질 위기에 처하면서 증권사들은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미국 뉴욕주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자택 대피령'을 내리면서 세계의 경제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의 인적이 뚝 끊겼다. 사진은 평소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뉴욕 타임스스퀘어 거리가 지난 23일(현지 시각) 오전 텅 비어 있는 모습.

여의도에서 20년 넘게 일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주가 하락이 실물경기와 맞닿아 움직이는 것은 IMF 이후 처음인 것 같다"며 "회사 수익이 급락하고 이에 따라 판관비도 통제되는 등 분위기가 매우 침체돼 있다"고 했다.

◇글로벌 증시 폭락에 따른 유동성 위기

현재 증권사들에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유동성'이다. 돈이 부족하다. 수조원씩 현금을 들고 있던 대형 증권사조차 현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는데 가장 큰 원인은 '주가연계증권(ELS)'이다. ELS는 특정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가 일정 기간 미리 정해 놓은 범위에 있으면 약정된 수익을 지급하되, 구간을 벗어나면 원금 손실을 보게 되는 파생 금융 상품이다.

증권사들은 ELS 운용의 일환으로 해외 선물이나 옵션 상품 등에 돈을 넣는데 대부분 유럽과 미국, 홍콩 등 세계 주요 증시와 연계돼 있다. 예컨대 '특정 지수가 6개월간 2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3%의 수익을 얻는다'는 식의 조건을 건 상품에 일정 비율의 '증거금'을 내고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를 일으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증거금으로 100억원을 내고 총 300억~400억원 규모의 선물·옵션 투자를 하는 식인데 올해 글로벌 증시가 20~30%대로 하락하다 보니 증거금을 더 내야만 투자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때 선물·옵션 상품을 설계해 운용하는 해외 기관들이 "증거금을 더 납부하라"고 하는 것을 '마진콜(margin call)'이라고 한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 증권사 기준 마진콜 규모가 1조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은 일단 가지고 있던 돈으로 급히 마진콜에 대응했으나 다시 금고(金庫)를 채우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CP(기업어음) 등을 대거 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단기 금융시장에 대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증시가 회복되면 증거금은 다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손실이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규모 투자 계획 휘청

세계경제가 '올스톱' 상태에 빠지면서 증권사들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투자 계획도 휘청거리고 있다. 국내외 부동산 개발사업이나 대규모 인수합병(M&A) 등의 딜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이를 기반으로 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자금 조달을 하려던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미래에셋대우다. 국내 자본의 해외 부동산 투자로는 사상 최대인 58억달러(약 7조원)를 투입해 미국 내 최고급 호텔 15개를 인수하는 거래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인수 대금의 대부분을 담보 대출이나 투자 유치를 통해 충당하려 했으나 최근 극심한 침체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HDC현대산업개발과 컨소시엄을 이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도 뛰어든 상태인데 코로나 사태로 아시아나항공이 존폐 기로에까지 몰리다 보니 투자를 밀어붙이기 쉽지 않은 상태다.

◇증권주 이달에만 30~40% 하락

24일 국내 증시는 미국의 '무제한 양적 완화' 소식과 총 50조원 규모의 금융시장 지원안 등에 힘입어 8% 넘게 상승했다. 주요 증권주도 10% 넘는 상승률을 보이며 모처럼 상승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지난 23일까지만 해도 국내 주요 증권사 주가는 이달 들어서만 30~40%대 하락률을 기록하는 등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강승건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증권사의 1 분기 실적 변동성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주식시장 안정화 여부와 각 증권사 운용팀의 전략에 따라 분기 손익이 결정되겠지만 대형 증권사의 경우 과거 위기 상황에서도 대규모 적자를 낸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월말까지 흐름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마진콜(margin call)

선물(先物)이나 옵션 계약을 맺을 때 담보로 맡겼던 자금(예치증거금)이 부족해질 경우 이를 채워 달라고 요구하는 것. 대개 부족분(margin)을 보전하라는 전화(call)를 받는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마진콜이 걸리면 투자자는 신속히 증거금을 채워야 계약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