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25)씨는 수도권 한 공업전문대학을 졸업한 무직(無職) 청년이었다. 그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폭행을 비롯한 각종 가학 행위를 지시하고 촬영해 채팅방에서 돈을 받고 파는 동안에도, 다른 쪽에서는 불과 석 달 전까지도 장애인 등을 돕는 봉사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의 지인들은 평범해 보이던, 때로는 선량해 보이기까지 했던 조씨가 국민적 공분을 산 성범죄 사건의 주범이란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보육원생과 바둑 두는 조주빈 - 미성년자 포함 여성들을 상대로 성(性) 착취 장면을 촬영하고 텔레그램으로 유포한 조주빈(25·왼쪽)이 작년 10월 수도권의 한 보육원에서 봉사활동 중 어린이와 바둑을 두고 있다. 조주빈이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을 유포한 시기는 작년 9월부터 이번 달까지로, 그가 봉사활동을 다니던 시기와 겹친다. 조주빈은 작년 말 인터넷 매체 인터뷰에서 "여러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 나 역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3일 조씨가 활동했던 봉사단체에 따르면, 조씨가 이 단체에 처음 방문한 것은 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던 2017년 10월이다. 자신을 "같은 지역 전문대에 다니는 학생"이라며 "군 전역 후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는 이듬해 3월까지 5개월간 봉사활동했다. 1년간 활동을 중단한 그는 작년 3월 다시 단체를 찾아왔다고 한다. 이때는 부팀장을 맡아 연말 행사까지 직접 챙겼다. 여러 보육원, 장애인 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올해 초에는 코로나 영향으로 보육원 방문을 비롯한 봉사활동이 중단됐다고 한다.

조씨는 작년 3월부터 12월까지 이 단체에서 봉사 등을 기획하거나 직접 참여했다. 작년 11월 보육원 연말 운동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전한 인터넷 매체 기사에는 조씨 인터뷰도 나온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 나 역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군 전역 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며 "보육원 아이들과 형과 동생, 오빠와 동생이 돼 편안히 즐길 수 있었고, 앞으로도 봉사를 삶의 일부로 여기고 지속적으로 해나가겠다"고 했다. 2018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수많은 여성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대외적으론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봉사단체 측은 본지 통화에서 "'박사방'의 피의자 이름이 '조주빈'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혹여 보육원 아이 중 피해자가 있을지 우려돼 23일 경찰에 직접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박사방 등 텔레그램 성범죄 채팅방의 운영자는 물론 가입자 등도 끝까지 추적하겠다"며 "최소 수만 명의 사이버 성범죄자에 대한 수사가 예상된다"고 했다. 여성단체들은 성 착취물 공유 채팅방에 가입해 영상을 시청한 사람이 26만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