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을 여성 판사 출신의 대결

조선일보 정치부가 4·15 총선 격전지를 찾아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4·15 핫!플(플레이스)’ 4회는 서울 동작을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영입한 이수진 후보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나경원 후보가 맞붙는다. 두 사람 모두 전직 여성 판사 출신이다. 이 후보는 "나경원은 이수진이 잡겠다"고 했고, 나 후보는 "이 후보는 동작을 잘 모른다"고 했다.

◇이수진 "동작은 12년간 민주당 의원 못만든 아픈 손가락"

2020년 3월 16일 오후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동작을 후보가 서울 지하철 7호선 남성역 앞에서 퇴근길 주민들을 상대로 인사하고 있다.

이 후보는 16일 오후 6시 지하철 7호선 남성역 4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1시간여 동안 ‘퇴근길 인사’를 했다. 이 후보가 유세를 한 이곳은 경쟁자인 4선의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 사무실 바로 앞. 이번 총선에서 동작을은 주요 격전지이자 ‘전직 여성 판사’간 대결로 주목받고 있다. 나 의원이 사법연수원 24기로, 31기인 이 후보보다 선배다. 이 후보는 나 의원과의 비교 우위를 묻는 질문에 "비교하고 싶지 않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저의 모습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가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동작을은 지난 12년 민주당 의원을 만들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라며 "12년간 아껴둔 기회를 이번에는 이수진에게 달라"고 했다. 이어 "나경원 의원이 이끈 20대 국회의 결과는 말로만 하는 보여주기식 정치, 무조건 반대만 하는 정치였다"며 "동작을에서 이겨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승리의 선봉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로 등록 한 후, 매일 아침 7시 출근길 인사를 시작으로 전통시장과 동호회 등 지역 곳곳을 누비고 있다. "주민이 최고의 멘토"라는 일념 하에 휴대용 수첩을 들고 각종 의견과 민원을 청취하고 있다고 한다. 이 후보는 판사로 20여년을 일하다 지난해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서를 냈고, 민주당에 총선 인재로 영입됐다. 그는 이날 저녁 유세가 진행된 1시간여 동안 200번 넘게 "이수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쳤다. "처음 보는 분이다" "(여당에) 쉽지 않은 지역이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잘해줘야한다" "기대가 크다"며 이 후보의 어깨와 등을 두들기는 유권자도 많았다. 이 후보측은 "현장을 다녀보면 이번에는 좀 바꿔달라는 애절한 눈빛들을 보내주는걸 느낀다"고 했다. 한 60대 노인은 "가보(家寶)로 간직하고 싶다"며 이 후보의 사인을 요청했다. 이 후보는 ‘건강하세요. 이수진 올림’이라는 글귀와 함께 하트까지 그려줬다. 이 후보를 알아보고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이들도 많았다.

2020년 3월 16일 오후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동작을 후보가 서울 지하철 7호선 남성역 앞에서 퇴근길 주민들을 상대로 인사하고 있다.

이 후보는 "동작 발전을 위해선 힘있는 여당 후보, 그리고 ‘원팀(one team)’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과 동작갑 김병기 국회의원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이 후보의 전략 공천에 반발했던 강희용 동작을 지역위원장과 허영일 전 행정안전부장관 정책보좌관 등도 마음을 바꿔 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강희용·허영일 두 예비후보의 통큰 결단으로 ‘동작 원팀’이 완성됐다"며 "이수진에게 기회를 준다면 남은 삶을 동작을 위해 바치겠다. 자식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동작을 돌보겠다"고 했다. 지역 발전을 위한 핵심 공약으로는 "복지와 안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19년간 판사라는 직업을 사랑했지만 사법 개혁의 완성을 위해 당의 영입 제안을 수락했다"고 총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이어 21대 국회에 입성하면 "오랫 동안 노력해온 사법개혁 과제를 국회 입법으로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또 "정치를 정치답게, 국회를 국회답게, 법원을 법원답게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경원 "정권 무능 심판하고 사통팔당 동작 만들 것"

서울 동작을 미래통합당 나경원 후보가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17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지하철 7호선 남성역 출근길 인파 속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일렬로 섰다. 서울 동작을에 도전하는 나경원 후보를 규탄하는 시위대였다. 이들과 나 후보 지지자들이 맞닥뜨리자 순찰차가 나타나서 충돌을 막았다. 나 후보는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이번 선거는 친문(親文)세력과의 대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라고 했다. 좌파성향 시민단체 측이 지난해부터 나 후보를 고발한 것만 11건에 달한다. 그는 "친문 지지자들이 ‘나경원 죽이기’에 올인(All-in)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권의 실정을 가장 아프게 때린 야당 정치인이란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시위대가 물러서자 나 후보와 지지자들이 구성한 ‘동작 봉사단’이 남성역 골목시장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다. 동작을의 7개 동(洞)을 매일 하나씩 돌면서 방역활동에 나선다고 한다. 핑크색 방역복을 덧입은 나 후보가 소독액으로 골목가게 손잡이를 하나씩 닦아 나갔다.

1시간 가량 이어진 골목시장 유세에서 나 후보를 알아보지 못하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지물포 주인장은 "요즘 도대체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하소연했고, 떡집 사장님은 "손님이 없는 김에 내부 공사를 한다"며 한숨 쉬었다. 골목시장 야채가게 할머니는 "나한테는 안 와도 돼"라면서 나 후보 등허리를 두드렸다. 나 후보가 "언니, 저예요"라면서 알은 체를 하자 멀리서 달려와 안아주는 주민도 있었다. 반대로 나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은 아예 인사받기를 거부했다.

서울 동작을 미래통합당 나경원 후보가 방역활동을 하고 있다.

나 후보 캠프 측은 "'4년간 일은 잘한다'는 지역주민들의 평가가 강점"이라며 "민원의 날인 '토요데이트' 상담 건수가 1000건을 넘었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동작에는 나경원이 있다"는 구호도 정했다. 나 후보는 "다들 마스크 쓰셔서 표정을 볼 수 없으니 조바심이 든다"면서도 "수도권 민심은 끝까지 알 수가 없지만 유권자들이 정권의 무능을 심판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원내대표 출신인 나 후보는 통합당에서 가장 먼저 공천을 확정했다. 우한 코로나 사태로 유동인구가 확 줄어들었지만 아침 7시 지하철역 출근길 인사를 시작으로 매일 같이 전통시장, 복지관, 테니스장, 등산로 등을 훑으며 ‘뚜벅이 유세’를 한다. 이번 총선의 문턱을 넘어서면 나 후보는 당내 유일한 5선 여성 중진의원이 된다. 21대 국회에 입성하면 동작구까지 더해 ‘강남4구(區)’로 만들겠다는 것이 포부다. 나 후보는 "강남권까지 잇는 대중교통망을 보다 촘촘히 깔아 ‘사통팔달’ 동작을 완성할 것"이라며 "동작에서 태어나 5만 시간 가까이 주민들과 함께 보낸 동작사람만이 진심으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나 후보를 잡기 위해 같은 여성 판사 출신 이 후보를 공천했다. 서울 동작을 판도가 ‘진영대결’로 흐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나 후보는 이 후보에 대해 "민주당 이 후보는 이 지역에 사셨던 분이 아니라 동작을 잘 모른다"며 "저도 유권자도 (이 후보를) 잘 알지 못해서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