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도착했습니다. 비닐장갑 끼시고 열린 문으로 들어오세요"
지난 11일 오전 대구 남구 도로변 인근에 정차한 이모(38) 소방관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A씨에게 구급차 도착을 알리는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는 사이렌 없이 조용히 이동했고, 도착 300m 전에는 경광등도 껐다. 주민들의 이목을 끌지 않고 확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통화 이후 레벨 D 방호복을 입은 이 소방관이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연뒤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5분쯤 지나자 구급차가 세로로 주차된 도로변 오른쪽 비탈길 위에서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낀 A씨가 나타났다. A씨는 20~30m 정도를 질주하며 구급차 뒷좌석까지 약 10초 만에 뛰어들어가 문을 닫았다.
우한 코로나 확진자들을 이송하는 현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박석진 대구소방본부 예방홍보팀장은 "확진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걸 꺼려해 구급차로 뛰는 환자분들이 종종 계신다"면서 "보호와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분들이 스스로를 죄인처럼 생각하시는 듯해 마음이 아프다는 소방관들이 많다"고 했다.
A씨를 실은 구급차가 국군 대구병원에 도착하자 이 소방관은 "선생님, 먼저 차문 열지 마시구요. 직원들이 열어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했다. 확진자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병원 직원 2명이 구급차 문을 열고 A씨를 병동으로 안내했다. 이 소방관은 이런 식으로 오늘 하루에만 확진자 4명을 이송했다.
지난달 22일부터 소방청은 우한 코로나 환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동원령을 내렸다. 급증하는 대구지역 확진자를 효율적으로 이송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국 17개 시·도 소방본부에서 구급차와 구조인력들이 대구로 파견됐다. 12일 기준 구급차 122대와 소방관 244명이 2교대로 대구에서 코로나 확진자들을 이송 중이다. 전국 소방관들은 경증 확진자를, 대구소방본부는 중증 확진자나 코로나 외 응급환자들의 이송을 전담한다. 이들이 지금까지 이송한 확진자는 12일 기준 총 5223명이다.
11일 오전 8시, 소방관과 구급차가 집결한 대구 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부지를 찾았다. 15만 8807㎡(약 4만 8000평)규모인 이곳에 폐쇄된 건물과 잔디밭 등을 제외한 빈 공간에 노란색의 구급차122대가 A·B·C·D 4개 조별로 30여대씩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기자가 타고 온 차량이 진입하자 좌우에 위치한 천막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천막에서 소방관 두 명이 차를 멈춰 세우고는 "체온 측정하셔야 합니다. 잠시 내려주세요"라고 했다. 소방관을 포함해 이곳을 찾는 모든 인원은 체온 측정 후 37.5도 미만이어야 내부 진입이 가능하다.
맞은편 천막에는 체온 측정을 마친 소방관들이 근무자 등록과 안내사항을 전달받고 있었다. 대구소방본부 소속 소방관은 마이크로 "조수석 문손잡이에 청테이프를 X자로 붙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송 초기에는 확진자가 뛰어오다 무의식적으로 조수석 문을 벌컥 열고 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일선 소방관과 확진자의 밀접 접촉 우려가 높았고,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소동이 벌어져 주민들이 확진자를 알아채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X자 청테이프를 붙이고 뒷좌석 문을 열어두자 A씨처럼 급히 뛰어와도 확진자들이 탈 곳을 한눈에 파악해 헷갈리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이날 정수장에 주차된 구급차 244대에는 모두 청테이프가 붙여져있었다.
안내사항을 들은 소방관들은 정수장 안쪽으로 이동해 레벨 D 방호복 세트를 입었다. 4일째 확진자를 이송 중이라는 김충식(37) 소방관은 양쪽 정강이 부분과 덧신을 청테이프로 두번 정도 둘러 감쌌다. 김 소방관은 "바지 통이 넓어 이동에 방해가 되거나 바지가 발 밑으로 흘러내리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면서 "덧신도 신발에 딱 붙게 만들어야 운전석 페달을 정확하게 밟을 수 있다"고 했다. 현장에는 김씨처럼 앞서 교대한 동료에게 전수받은 ‘청테이프 노하우’를 실천 중인 소방관들이 다수였다.
방호복 착용이 한창일 때 상황실로 쓰이는 천막 두 동에선 안현우(42) 소방관이 확진자들에게 이송 안내 전화를 걸었다. 확진자의 안부를 물은 안 소방관은 괜찮다는 대답이 들리자 "준비하고 계시다 저희가 도착하면 다시 연락드릴테니 그때 나오시면 된다"고 했다. 이후 이송 업무를 맡은 구급대원이 출발전에 한 번, 도착 후에 한 번 등 총 3번의 안내 전화를 건다. 확진자가 타인의 눈에 띄지 않고 즉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1차 전화와 방호복 착용이 완료된 오전 10시쯤부터 구급차량 30대가 줄지어 정수장을 빠져나갔다. 경광등은 켜졌지만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대구 시내 곳곳에 거주하는 확진자들을 이송하기 위한 출동이다.
이송 예정인 병원 쪽에서 병상 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이 올때마다 구급차들은 수시로 출동한다. A·B·C·D 4개 조가 순환형으로 출동하면서 이송 공백을 최소화한다. 한번 출동하면 구급차 1대당 확진자 1명을 이송한다. 확진자 이송 후 복귀한 소방관은 20~30분 정도를 쉬지만, 환자가 많을 경우 돌아오자마자 소독만 마친채 다시 출동하게 된다.
오후에 확진자를 태운 김정호(41) 소방관의 구급차는 시속 60㎞ 정도의 속도로 거점병원인 대구 동산병원으로 향했다. "긴급·응급환자가 아니니 절대 과속하지 말라"는 교육 때문이다. 김 소방관은 확진자를 내려준 병원에서 구급차량을 1차로 소독받은 뒤, 두류정수장으로 복귀해 2차로 소독을 받는다.
소독 코스는 차량 실내 소독과 개인 소독 두개 천막으로 이뤄져있다. 차량이 천막 앞에 도착하면 방호복을 입은채 대기하고 있던 제독 요원들이 차량 내부에 섭씨150도의 열을 분사한 뒤, 휴대용 제독기를 들고 과산화수소수를 뿌린다.
구급차에 타고 있던 소방관은 개인 소독 천막 앞에 도착해서야 차에서 내린뒤 양팔과 양다리를 벌리고 선다. 제독요원이 확진자와 접촉했는지 여부를 묻자 김 소방관은 "없다"고 했다. 접촉이 있을 경우, 방호복을 소독 후 즉시 폐기하고 새 방호복을 지급한다.
지난달 22일부터 파견돼 활약한 전국 소방관들은 오늘부로 구급차량 60대, 소방대원 120명을 남기고 대구에서 철수할 방침이다. 소방당국은 "대구에서 확진자가 감소추세에 접어들어 이송인원이 감소한 만큼, 필요인원만 남기고 나머지 소방관들은 본래 업무에 전념토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다음 주까지 이송업무를 맡게 될 김정호(41) 소방관은 "조만간 마스크 없는 대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면서 "대구에서 확진자가 줄어드는 것처럼, 전국에서 코로나가 사라지길 기원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