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조 바이든(77) 전 미국 부통령은 대역전극을 쓰고 있다. 초반엔 경쟁자 버니 샌더스(78) 상원의원에게 크게 뒤졌지만 최근 연이어 대승을 거두며 선두가 됐다. 이젠 샌더스의 경선 하차가 시간 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그 배경으로 민주당이 강성 좌파 샌더스에 맞서 본선 경쟁력이 높은 중도 주자를 중심으로 뭉쳤다는 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그의 경력 덕에 흑인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점 등이 꼽힌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이렇다 할 정책 공약도 없는 고령의 주자가 어떻게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미 언론들은 바이든의 인간적 매력과 심금을 울리는 가족사(史)에 주목하고 있다.
바이든의 가족사는 미 정계에서 드물 정도로 비극적이다. 그는 서른 살이던 1972년 델라웨어주에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공화당 거물 현역을 꺾은 이변이어서 단숨에 전국 스타가 됐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돼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아내가 세 자녀를 데리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오다 트럭에 치여 13개월 된 딸과 함께 사망한 것이다. 두 살, 세 살이던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이때 충격을 두고 바이든은 "가족을 잃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해됐다"고 했다. 그는 의원직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동정 여론이 일었고, 의회와 대통령은 바이든을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1973년 아들들이 입원 중인 병실에서 울면서 의원 선서를 했고, 실제 의원직을 시작하기까지는 1년 넘게 걸렸다. 그러고는 의회가 있는 수도 워싱턴에 거처를 구하지 않고 매일 집에서 왕복 4시간 거리를 기차로 통근했다. 현 아내 질 바이든(68)과는 1977년 재혼했다.
내리 6선(選) 의원을 한 그는 앞서 두 번 대선에 도전했다. 이번이 대권 3수(修)다. 1988년엔 논문 표절로 낙마했고, 2008년엔 오바마 돌풍에 밀렸다. 바이든이 부통령 경륜을 내세워 2016년 대선을 준비하던 2015년, 장남 보(당시 46세)가 뇌암으로 사망했다. 보는 델라웨어주 검찰총장을 지낸 인재였다. 바이든은 슬픔에 빠져 출마를 포기했다. 차남 헌터(49)도 1972년 사고 후유증으로 뇌 질환을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인은 반세기 동안 바이든이 슬픔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고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에 미국인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도 이런 고통을 승화시킨 친화력과 공감 능력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고 있다. 그가 부통령 시절인 2012년 샌디훅 총기 참사 때 유족에게 전화해 1시간 넘게 위로한 일화는 유명하다.
요즘 바이든의 유세장은 '거대한 힐링 캠프'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후보와 유권자가 대화하며 서로 다독이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선거 슬로건도 "미국을 치유하고 통합하자"는 것이다. 특히 슬픔을 공유하는 집단 체험을 중시하는 흑인들에게 바이든은 '오바마 대리인' 이상의 존재다. 공격적인 샌더스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화된 모습이다.
바이든은 지난 2일 민주장 경선 후보였던 피트 부티지지(38)가 사퇴하며 자신을 지지하자 "아들 보가 생각난다"고 해 또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샌더스의 건강보험 개혁을 공격할 땐 "건보 문제를 (가족을 떠나보낸) 나만큼 아느냐"고 할 정도로 정책 토론도 개인화시킨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은 슬픔을 정치적 재능으로 바꿨다"면서 "문제는 팩트보다 스토리만 앞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이 국가적 슬픔과 위기 관리엔 발군이지만, 구체적 정책 비전을 실행하는 데는 취약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