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준(37)이 라디오 DJ가 된다. 오는 24일 자정부터 방송하는 CBS 음악 FM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를 진행한다. 시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청취 점유율 높은 채널에서 심야 방송을 맡았다. 박준 시인은 DJ를 맡은 이유에 대해 "시는 눈으로 묵독하기도 하지만 사실 오랫동안 입으로 읊고 귀로 듣는 장르였다"면서 "라디오에 시를 접목해 시의 음악성을 살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박준 시인은 “대부분 사람들은 하루 종일 모니터나 화면을 보고 시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면서 “청각을 이용하는 라디오로 자극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집과 산문집이 각각 1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시인이다. 그는 "어제보다 더 좋은 시를 쓰는 것이 시인의 본분"이라면서도 "좋은 언어를 세상에 퍼뜨리는 일도 시인의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뉴스에서의 실용적이고 즉발적인 언어 대신, 심야 라디오에서는 조금 완곡하고 부드러운 언어를 쓰고 싶었어요. 맑고 부드러운 언어로 처음과 끝을 채우는 일은 시인이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일 아닐까요."

출판사 창비 팟캐스트 '시시한 다방'에서 3년간 PD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라디오 작가를 했던 이병률·허수경 시인을 예로 들며 "라디오라는 매체가 뜻밖에 문학적인 면이 있다"고 했다. "음악만 나오는 게 아니라 문학적 텍스트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이소라의 FM음악도시'를 특히 좋아했는데 부끄럽지만 그때 멘트를 따라 하면서 DJ를 꿈꾸기도 했어요."

'시작하는 밤'이라는 제목도 직접 정했다. 시처럼 아름다운 노랫말들을 꼽아 낭송하는 코너도 기획하고 있다. 그는 시에 근접한 노랫말로 루시드폴의 '고등어'를 추천했다. "고등어가 화자인 노래인데, 노래를 들으면 가족들의 저녁 밥상이 떠올라요. 아름다운 수사보다는 누구에게나 있었던 보편적인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이 시적인 노래라고 생각해요."

사연을 읽고 상담하는 일은 약간 고민이란다. "문학은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말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것을 지키면서 상담을 해야 할 텐데, 속 시원한 '사이다'처럼 얘기해주진 못할 것 같아요." 톡 쏘는 상담 대신 사연에 맞는 시를 처방해주겠다고 한다. 시인은 "좋은 책을 읽으면 혼자 있는 기분이 들지 않듯이, 오롯이 혼자이면서도 외롭지 않은 라디오를 만들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