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1년 넘게 부진한 가운데 최근 내수시장 선두권 업체들마저 잇따라 M&A(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어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1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영화관 1위업체 CJ CGV가 매각설에 휩싸였다. 회사 측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으나, 매각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600~700% 수준인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애쓰고 있으나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재무구조 개선 작업 중에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 영화관 관객이 줄어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에서 압도적인 점유율(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등 영화관 기업이 현상 유지에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21일 코로나19 확진자의 방문으로 임시 휴업한 CJ CGV 전주효자점

이런 상황은 CJ CGV뿐만이 아니다. M&A 시장 관계자들은 올해 들어 의외로 많은 내수시장 주요업체가 경영에 어려움을 느껴 매물로 나왔다고 설명한다. CJ CGV 외에도 이베이코리아, 잡코리아, 아웃백 등이 올해 들어 M&A 시장에 새로 나왔다.

이 기업들의 특징은 각 업계 1위, 또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선두권 업체라는 점이다. 일등 업체마저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내수 시장은 얼어붙고 있다. 선두 업체가 이 정도이면, 후발주자들은 상황이 더 심각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롯데쇼핑이 본업인 유통업을 대폭 축소한다고 했더니 주가가 반등한 것 또한 위험 징후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롯데쇼핑 점포 200여개를 폐점하겠다고 밝힌 이후 주가가 한때 3% 넘게 반등하기도 했다.

구조조정 가능성은 주가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남성현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11일 가전유통업계 1위 업체인 롯데하이마트에 대한 보고서에서 "롯데하이마트는 아직 구조조정 계획에서 빠져 있지만 모회사(롯데쇼핑)처럼 구조조정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점포 및 인력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 현 주가는 매력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가 수출 중심이다 보니 반도체 호황에 가려져 있었지만, 내수 시장만 놓고 보면 붕괴 직전이라고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1년간 음식료업종과 유통업, 건설업과 통신업, 금융업, 은행업종지수는 25~48% 급락했다. 코스피지수가 최근까지 2000선 안팎에서 움직였지만,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일부 글로벌 기업 덕분이고 실상은 훨씬 더 초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설명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 관계자들은 야당이던 시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을 공격하면서 '일부 수출 대기업만 잘 나가는 것일 뿐 내수는 망가졌다. 수출이 좋아봐야 일부 대기업과 대기업 직장인만 수혜를 누린다'고 공격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로 재임할 당시 여러 번에 걸쳐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던 것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그 말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 확대, 기준금리 인하, 임시투자세액공제 부활, 특별연장근로 인가 확대 등 8대 분야에 대해 30개 과제를 긴급 건의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법인세 인하와 대출 규제 완화, 전폭적인 재정정책 등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기업들 사이에 ‘정부가 도와주고 있다’는 신뢰가 형성돼 어려운 순간에도 신규 투자 등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