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광주시장을 만나러 간 것은 요즘 시절 보기 드문 ‘대인배’ 풍모 때문이었다. 대구 환자들에게 광주의 병상(病牀)을 나눠주겠다고 한 것이다. 정치적 성향으로 보면 대구와 광주는 가장 멀리 떨어진 두 도시다.

"대구가 이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었겠나. 수많은 대구 시민이 코로나 확진을 받고도 병상이 없어 방치되고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보도를 봤다. 내가 광주시민단체총연합회에 이 뜻을 전하자, 다음 날 오후 광주 지역 43개 시민단체 대표 등이 발표장에 나왔다."

―대구의 요청이 없었는데 광주가 알아서 손을 내민 것인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양내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실제 도움이 돼야 한다. 발표 날 아침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물으니, '병상 확보가 가장 절실한 과제'라고 했다. 우리 간부들에게는 '대구의 요구에 적극 응하라.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 못 이루면 평가 못 받아

이용섭 광주시장은 “광주가 나서면 다른 지자체에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코로나 확진자 발생은 대구보다 광주에서 먼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지난달 초 광주에서 코로나 확진자 두 명이 발생했다. 그때만 해도 청정 지역이었던 대구에서 마스크 1만장을 보내왔는데, 이런 재난이 닥칠 줄 어떻게 알았겠나. 이번에 우리는 의료진과 함께 마스크 2만장과 세정제, 생필품 키트를 보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대구 환자를 받겠다는 결정에 대해 광주의 일반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내가 시장이 된 뒤 '광주형 일자리'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했지만, 이번 건으로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다. 물론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다. 대구에서 환자를 싣고 오면 지역사회에 감염이 안 될까, 우리도 의료 시설이 취약한데 병상을 내주면 나중에 다른 문제가 없을까…, 하지만 누구도 이를 대놓고 말하진 않았다."

―다른 광역단체장은 가만히 있는데 굳이 나서서 이렇게 할 이유가 있었나?

"과거 영남 정부 시절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왜 대구를 돕고 그쪽 신천지 환자를 도와야 하느냐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5·18 광주가 고립됐을 때 여러 곳에서 도와줬다. 이제 우리가 빚을 갚을 차례다. 광주 시민들이 갖고 있는 나눔과 연대의 가치가 실현된 것이다. 나는 단지 제안했을 뿐이다."

―시민들의 공감과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것 자체가 시장 역량 아닌가?

"나는 광주시장에 당선됐을 때 '나를 지지했든 그러지 않았든 다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선거 때의 내 편 네 편 안 가리고 적재적소 인사를 했다. 포용과 통합을 못 이루면 광주시장으로서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한들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에게 국민 통합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선됐을 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국민 분열 정권을 만들었다.

"어느 대통령인들 국민 통합을 안 하겠다는 대통령이 있겠나. 문 대통령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인사(人事)가 중요하다. 하지만 단기간에 자신의 정책 철학과 가치를 실현하려다 보니 캠프 사람들을 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위기 국면이고, 전문가들 얘기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광주의 담화 발표 며칠 전인가, 대구시장이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병상 제공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는데?

"내가 이재명 지사를 비판할 입장이 아니다. 그의 처지가 충분히 이해된다. 단체장은 자기 지역 주민을 먼저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우리 간부 회의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왔고 나도 고민했다."

―자치단체장은 자기 지역을 챙겨야 하겠지만 한편으로 국가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공직자 아닌가?

"그렇다. 이번 사태는 국가적 재난이지 특정 지역 문제가 아니다. 지역 경계를 뛰어넘어 국가의 모든 역량이 투입돼야 한다. 다른 지자체들도 다 동참시키려면 역시 광주가 앞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광주가 앞서는 게 좋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광주는 대의(大義)를 앞세워 왔고 스스로 '정치 1번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인구는 적지만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광주가 이렇게 나서면 다른 지자체에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오늘 자리에는 맞지 않지만 '정치 1번지'라는 말이 나온 김에 묻겠다. 왜 광주는 좌파 정권과 결합하는지 의문이 있다. 광주 사람들은 타고나면서 좌파 성향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현 정권을 좌파가 아닌 진보로 본다. 새가 두 날개로 나는 것처럼, 보수와 진보는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 두 세력은 보완적 관계다. 서로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보수는 오늘을 중시하고 진보는 내일을 중시한다. 광주 시민들은 오랫동안 차별과 소외를 겪어왔다. 오늘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내일을 꿈꿔야 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진보 정권 편에 서게 된 까닭이다."

―문재인 정권은 안보·외교·경제 등에서 거의 모두 실패했다. 이념 성향을 떠나 무능한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비판하는데 유독 호남에서는 대통령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다. 왜 그런가?

"문 정권을 대다수 국민이 비판한다는 주장은 보편성이 떨어진다. 현재 야당보다 여당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지 않는가. 호남 지지율이 높은 것은 호남마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진보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특히 어려우니까, 정권 지지도 더 강해지는 것이다. 일종의 소명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천지 신도의 집단 감염

―내 주위에서는 다들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 광주 시민들은 현 정권의 국정 운영에 만족하는가?

"70~80%가 그렇다. 동반 성장, 양극화 해소, 따뜻한 포용, 지역 균형 발전 등 현 정권의 지향 가치는 옳다고 본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의 경우 속도 조절을 못 했다는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는 것이다."

―당초 인터뷰 주제로 돌아가자. 코로나 환자 급증 사태는 신천지 신도의 집단 발병에서 비롯됐다. 광주는 신천지 신도의 감염과 무관한가?

"대구의 신천지 신도 수는 1만여명 선이지만, 광주에는 신도 수가 3만2000명이다. 전남까지 합치면 5만명쯤 된다. 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을지 모르겠다. 지난달 20일 밤 신천지 신도 한 명이 확진자로 보고됐다. 그는 16일 신천지 대구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감염됐다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이재명 지사는 수사 압박과 강제 시설 폐쇄 등 보란 듯이 강공책을 썼는데.

"신천지를 어떻게 손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역사회 확산을 막는 게 백배 더 중요했다. 코로나 대응팀에 신천지 교인 책임자들을 참여시켰다. 자발적으로 방역에 협력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했다. 이들은 3만2000명의 신도 명단과 신천지 시설 92곳을 자진 보고했다. 대구교회 예배에 참석한 신도 명단도 제출했다. 만약 신천지를 적대시하고 강하게 나갔으면 이들은 지하로 숨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면 광주 지역에 다 확산됐을 것이다."

―박원순·이재명 등은 매스컴 앞에서 신천지를 압박해야 했는데, 광주에서는 어떻게 자발적 협조를 받아낼 수 있었나?

"내게도 왜 다른 단체장처럼 강하게 하지 않느냐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강하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시민들에게 확산되는 걸 막는 게 중요하다. 나그네 옷을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다."

―과거 정권의 햇볕정책 논리인데?

"내가 노무현 청와대에서 혁신관리수석비서관을 해봤다. 혁신은 그 자체가 강한 속성을 갖고 있다. 그 강함으로 저항과 마찰을 불러온다. 그러면 성공할 수 없다. 혁신 수단은 부드러울수록 실효성 있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도 그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신천지를 적대시해 보여주기식으로 강하게 밀어붙일 수는 있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그쪽의 협조를 받아낸 광주에서 성과가 있었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을 살인죄로 고발한 박원순 시장이나, 이만희의 기자회견 현장에 나타나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이재명 지사의 행태를 보면 국가 재난 상황을 이용해 개인 정치 쇼를 벌이는 것 같다.

"이런 질문은 내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 정치인은 그런 행위도 필요하지 않은가. 나는 대통령에 나갈 사람이 아니고…, 나와 대비시키지 말아달라."

―정부와 여권은 코로나 사태에서 신천지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신천지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부추겨 국민적 울분을 그쪽으로 돌리려는 것 같다. 신천지는 '이단(異端)'으로 몰려 있어 공격하기 좋다. 하지만 이단 문제는 교계에서 따질 사안이고 집단 감염 원인과는 상관없다. 신천지가 감염자들의 온상이 됐다는 책임은 크지만 일부러 의도했던 것도 아닐 것이다. 어디에선가 감염돼 자기들도 모르게 퍼뜨렸을 뿐이다. 만약 불교·기독교·천주교 행사에서 집단 감염 상황이 발생했으면 여권에서 이렇게까지 공격했겠나?

"코로나가 발생된 뒤 수습 단계로 갔다가 신천지에 의해 급증했다. 신천지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사회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국민에게 송구해야 하고 당국의 방역 대책에 100% 협력해야 한다." 동네 약국에 길게 늘어선 줄

―코로나 확산은 세계적 유행으로 가고 있다. 우리 정부의 방역 대책이나 조치가 답답할 때가 많지만 전염병 성격상 불가항력의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대통령이든 단체장이든 국민에게 무조건 송구한 것이다. 자연재해에는 관(官)이 앞장서 인력과 재정을 투입하고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전염병 사태는 관의 대책만으로 안 된다. 시민들이 도와야 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에선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잘 씻어야 한다. 가능한 한 사람 간 접촉을 줄이는 '사회적 거리'를 둬야 한다."

이렇게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해도, 겨우 마스크 두 장을 사기 위해 동네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이놈의 정부는 대체 왜 있나’ 하는 마음의 불길이 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