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강원도 인제의 시골집에서 홀로 자가(自家) 격리 중이다.

WHO 공동조사단으로 최근 열흘간 베이징·선전·광둥성·광저우에 출장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한국 방역 전문가로서는 유일하다.

"WHO에서 연락 왔을 때 위험하지만 가겠다고 했다. 우한 코로나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였다. 중국 방문자에게는 2주간 자가 격리 조치가 떨어진다. 지난 화요일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혼자 이곳에 내려왔다."

중국을 보고 전율 느껴

이종구 박사는 "지금 시점에서 중국인 입국 금지는 실효성 없다"고 말했다. 자가 격리 중에 셀프 촬영.

인터뷰는 다섯 차례 통화로 이뤄졌다. 계곡에 있는 그의 집에는 휴대폰이 안 터져 통화 연결이 쉽지 않았다. 그는 대략 약속한 시각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방문한 중국 도시마다 텅 빈 느낌을 받았다. 비행기·열차·버스에도 승객이 거의 없었다. 관공서·호텔·상점 등 건물마다 체열 검사를 하고 손을 소독한 뒤에 출입시켰다. 마을과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도 이런 조치가 시행되고 있었다. 중국에서 매일 2000~3000명 발생하던 신규 확진자가 지금은 400명 선으로 떨어졌다. 우리가 방문한 광저우 등에는 신규 환자가 하루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였다. 중국이 한국보다 더 안전한 상황이 됐다."

―중국의 일부 도시에서는 한국인을 잠재적 감염자로 보고 격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어쩌다가 처지가 이렇게 역전됐나?

"공산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한 우한(武漢) 봉쇄 정책이 어쨌든 유효했다. 그 뒤로 의료진 4만여 명이 우한에 투입됐다. 대형 체육관에 병상을 만들었다. 중증(重症) 정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해 재배치했다. 역학대응팀을 1800개 구성해 접촉자들을 찾아내 격리했다. 스마트폰으로 이들의 격리 상태를 매일 체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자원을 한꺼번에 동원하는 중국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중국에 대한 역학조사의 성과는 뭔가?

"우한 코로나가 '인플루엔자'의 성격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공기(에어로졸)로 감염되는 인플루엔자라면 우리나라에 환자가 수만 명 발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움직임이 많은 소아(小兒)가 걸리면 전파가 급증하는데, 19세 이하 감염자는 2.3%에 불과했다."

―무슨 소리인가? 국내 확진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폭발하듯이 350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18명이 생겼다.

"예기치 않은 종교 집회, 병원과 요양시설을 통한 집단 감염 때문이었다. 중국에선 특히 종교 집단과 관련된 감염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높은 사망률은 청도 대남병원에서 기저 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감염됐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우한을 제외하면 치사율은 0.7% 내외다."

―당신은 지난 2월 10일 자 인터뷰에서 '너무 겁먹을 것 없다' '마스크 쓰고 손 잘 씻으면 100% 안전' '치료받으면 사망률 아주 낮아 우리 의료 수준에선 큰 위협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급격한 전염병 폭발을 전혀 예상 못 한 것이 아닌가?

"처음 나온 바이러스의 성질을 그때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 간 접촉만 통제하면 우한 코로나 감염을 막을 수 있다. 청도 대남병원 감염자들은 이미 노출돼 있고, 신천지 신도 감염자들도 2주 안에 총력전으로 찾아내면 어느 정도 확산 전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여기서 실패하면 감염자들이 꼬리를 물고 나올 것이다."

―천문학적 경제 손실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작동 정지됐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실체 이상의 공포에 의해 패닉 상태로 빠져드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2009년 국내 신종플루는 여섯 달이 넘어서자 감염자가 16만 명 보고됐다. 그때서야 '심각'으로 격상됐다. 지금은 2000여 명 선에서 정부가 비상 상태를 선언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신종플루 때는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됐지만 지금은 없지 않은가?

"신종플루는 공기 간 전파로 확산을 못 막아 백신이 개발됐다. 하지만 우한 코로나는 접촉 감염이다. 손 씻고 마스크 쓰고 사람들과 접촉만 피하면 막을 수 있다."

―코로나 발생 초기인 2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은 당신을 포함해 방역 전문가들과 청와대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전문가들이 낙관적 전망을 불어넣어서, 열흘 뒤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게 됐다는데?

"그때 환자 수가 적었고 완치된 퇴원자들이 속속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감염자가 불쑥 의료기관에 나타날 수 있다. 의료계 협력과 지방자치단체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낙관적 분위기에 묻혔다. 2015년 메르스 사태는 병원 감염 때문이었다. 그 뒤로 우리나라 병·의원 의료기관에 대한 보건위생 조치가 강화됐지만, 이번에 보니 여전히 빈 구멍이 드러났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발생 초기부터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주장했다. 감염원의 유입을 우선 막는 게 방역의 기본 아닌가?

"감염원 유입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어떻게 줄일지 방법론에서 다른 것이다. 그때만 해도 중국 데이터가 없고 환자 발생이 얼마 안 돼 정부로서는 과잉 대응하기가 그랬을 것이다." 시진핑의 방한 추진

―시진핑의 방한을 성사시켜 총선 국면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초기에 '중국 입국 금지'를 못 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중국인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 "중국과 한국은 운명 공동체"라고 말했다. 인도주의 차원으로 보기에는 선을 너무 넘었고 우리 국민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정치적으로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 같은 사람은 알 수 없다."

WHO 조사단과 우한시 방역 관계자 화상회의.

―2월 28일 문 대통령은 4당 대표 모임에서 "중국인 입국 금지는 초기라면 몰라도 지금은 실효성 없다"고 발언했다. 초기에 중국인 입국 금지를 안 한 걸 잘못으로 뒤늦게 인정한 건지 말뜻이 모호한데.

"중국은 지난 1월 23일 발원지인 우한을 봉쇄했다. 그 뒤로 다른 도시의 확진자 수는 수그러들었다. 중국은 1월 말에는 자체적으로 감염자의 출국을 제한했다. 중국의 이런 조치가 있기 전에 국내로 들어온 감염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전에 걸러지지 않은 감염자에 의해 코로나 전파가 확산된 거지, 그 뒤로 못 막아서 생긴 것은 아닐 수 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입국 금지는 실효성이 없다."

―미국·호주·뉴질랜드 등은 발 빠르게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는데?

"하지만 미국도 지역사회 감염이 보고되고 있다. 중국을 여행하지 않은 감염자 사례도 나타났다. 중국발 항공편 착륙을 금지한 이탈리아에서도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생겼다. 우리의 경우에는 중국이 아닌 싱가포르·태국·일본을 통해서도 감염자가 들어왔다. 단순히 중국만 막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중국 입국 금지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우리 교민도 못 들어오게 되는 문제도 있다. WHO는 '아직 여행 이동을 제한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WHO의 권고는 국제법적 효력이 있다."

―한국인들은 이제 다른 나라에서 입국을 금지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대부분 나라는 자국민 안전을 우선으로 내세우지 않나?

"국제보건규칙의 최고 권위자인 로런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교수는 '각 나라가 국제규칙을 위반하고 자국 이기주의로 가는 것에 대해 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입국 제한 조치는 과학에 의존해야 하고 인권침해나 인종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학술지에 발표했다. 자국의 이해타산에 따라 그런 조치를 취해도 사실상 검역 효과는 제한적이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어, 이런 전염병은 결국 번질 수밖에 없다는 뜻인가?

"비행기로 하루면 어디든 퍼져 나가는 세상이다. 우한 코로나는 이미 남미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확산될지 멈출지는 아직 모르겠다. 검역 조치로는 발병 확산을 늦출 수는 있어도 완전하게 막을 수 없다. 검역에만 모든 걸 거는 것은 위험하고, 나라 안에서 전염병 대처 능력을 키워야 한다."

―지금 같은 속도로 환자가 계속 급증하면 통제 불능에 빠지지 않을까?

"앞으로 1~2주가 고비다. 밀접 접촉자를 찾아내고 격리 조치로 추가 발생을 최소화해야 한다. 환자 분류 체계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중국 데이터를 보면 코로나 확진자 중 14% '중증', 6% '매우 위중'이다. 기저 질환을 갖고 있는 감염자의 사망률은 7.6~13.2%로 매우 높다.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치료 체계를 만들어야 희생을 줄일 수 있다."

힘든 국민 더 분노케 하는 것

―"코로나 확산 원인은 중국서 온 한국인"이라고 말한 주무장관인 박능후 복지부 장관, "대구를 봉쇄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 "대구 확진자들에게 병상 제공 못 하겠다'는 이재명 경기지사 등의 발언은 가뜩이나 힘든 국민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마스크 수급과 관련해 대통령과 경제부총리는 현장과 동떨어진 발언을 연달아 했다. 다들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재난 상황을 극복하려면 국민적 신뢰와 협조가 중요하다. 정치적 이해타산을 따져 국민의 마음에 상처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당신이 만약 현장에서 이 사태를 지휘하고 있다면?

"이제는 검사와 역학조사보다는 접촉자 추적과 격리, 환자 분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열 환자와 폐렴 조기 발견에 힘써야 한다. 회의나 보고, 언론 브리핑보다는 대책과 집행에 시간을 더 써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경쟁적으로 나서 혼선을 주고 있다. 전체를 통괄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우한 코로나는 공기 전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인플루엔자처럼 번져가지 않는다. 감염 위험성은 있지만 접촉만 피하면 걸리지 않는다. 손 씻고 마스크 쓰고 다니고 당분간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를 해야 한다. 이 전염병의 성격을 알면 막을 수도 있다. 일상적 삶을 포기할 만큼 너무 위축되거나 겁먹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