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아란 슈트 뒤로 아쉬움이 드리워졌다. 지난 27일 방송된 TV조선 ‘미스터트롯’.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을 열창한 뒤 터벅터벅 무대 뒤로 걸어나오던 이찬원(24). 퀭한 눈매와 창백한 안색, 한숨을 삼키려 앙다문 입술은 점수(916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기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우리 역사의 비극에서 비롯된 통한과 울분, 기쁨과 환호, 그만큼의 실망이 혼재된 복잡한 감정을 1996년생 이찬원의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걸까 되짚어봤을 것이다. 뭣보다 그가 정말 사랑하는 이 경연에 더는 오르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어깨를 짓눌렀을까. 트로트의 모든 것이 좋았던 열두 살 꼬마 이찬원의 눈망울이 겹쳐졌다. “무대 체질이라, 무대에서 내려갈 때가 제일 슬픈 것 같아요.”

'미스터트롯' 이찬원

그의 마음 속 눈물은 팬들이 닦아준다. ‘잃어버린 30년’이 아닌 ‘잃어버린 30점’이라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29일(오후 5시 기준) 네이버 캐스트 ‘30년’ 곡에 달린 1만5300여개 댓글 비율을 보면 10대 11%, 20대 17%, 30대 15%, 40대 27%, 50대 26%, 60대 5%로 전 세대의 열렬한 응원을 고루 받고 있다. 팬들은 “아직 끝난 거 아니다. 긍정의 힘으로 이찬원을 응원하자”라며 서로를 독려했다.

물론 실망하기엔 이르다, 오는 5일 선보일 준결승 2라운드 듀엣전에서 남진의 ‘남자다잉’을 선보이면서 ‘퍼포먼스 제왕’ 나태주에게 특급 전수받은 ‘허벅지 쓸기’라는 퍼포먼스가 기다리고 있다. 짧은 예고 영상이라, 그의 허벅지 쓸기가 바지 주름 펴기 같았다는 의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찬또다잉~’ 기다리느라 ‘다잉’할 것 같다는 팬 반응은 이찬원을 다시 일으켜세우기 충분할 것 같다.

'꿈의 시청률 30%’를 넘어선 TV조선 ‘미스터트롯’이 시청률 신기록을 매번 경신할 수 있었던 건, 기존 트로트판에서 보기 힘들었던 1030세대 유입이 한 몫 했다. 그 중심에 이찬원이 있다. 보들보들 순둥순둥 동글동글 만두상에 ‘꽃받침’ 애교를 즐기는 ‘귀염 뽀짝’ 1996년이지만, 트로트 얘기를 읊으며 ‘음홧홧’을 내뿜을 땐 ‘어르신’이 빙의한 듯하다. 붓대 잡고 쓸 거 같은 궁서체 글씨에 ‘킬포’(킬링포인트) 같은 유행어는 모르면서 ‘지도편달’ ‘해방둥이’ ‘번창’ 같은 용어를 구사해 가끔은 구한말에 태어난 ‘선비’ 같은 느낌도 자아내니 이 청년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 "여자의 가슴에 돌을 던진 사내야~미운 사내~"

‘미운 사내’. 이찬원 팬이라면 익숙할 그의 소셜미디어 아이디다. 지난해 전국노래자랑 경북 상주편 최우수상을 거머쥘 당시 부른 곡이 ‘미운 사내’였다. ‘여자들 가슴에 돌을 던졌다는’ 그 노래 가사마냥, 이찬원은 ‘미스터트롯’ 등장과 함께 대한민국 누나들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미스터트롯' 이찬원

예선전 ‘진또배기’로 돌아가보자. 어린 시절 SBS 스타킹에 ‘대구 조영남’이란 별칭으로 무대를 휘어잡던 모습은 간데없고, 긴장 탓인지 바짝바짝 타드는 입술에 사뭇 쑥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지금까지 ‘베스트 짤(사진)’ 중 하나로 꼽히는 “오또카지”의 전조인 듯 어쩔 줄 몰라하는 모양새 말이다. 그런 순둥이 입에서 터져 나온 “흐어어~~~어어”라니! 말간 표정의 ‘꼬맹이’ 이찬원의 어깻죽지엔 ‘으른미’ 넘치는 중년의 풍류가 넘실대고, 구성진 목소리엔 무대 경력 40년쯤은 돼 보이는 원숙미가 뿜어났다.

데스매치 경연 곡으로 선택한 나훈아의 ‘울긴 왜 울어’의 “울지이이마아아~”에서도, 본선 3차 트롯에이드 팀미션 ‘백세인생’ 속 “구우십세에에~”에서도 TV가 4D로 바뀐 듯,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울림통에 속이 다 뻥 뚫리니, 첫 소절로 담판 지어버리는 ‘트로트 한판승’의 남자로 각인됐다. 자유자재로 음을 갖고 놀면서 ‘꺾고 긁고 맛보고 즐기니’ 장윤정 심사위원 말마따나 ‘트롯업자’! 이건 거의 음계 위에서 작두 타는 수준이었다.

아이돌 매력은 덤이다. ‘멜팅 찬원’이란 애칭처럼 특유의 ‘누누슴(눈웃음)’으로 누나 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웃을 때 만화 캐릭터처럼 ‘네모 입’으로 변하는 것도 ‘저장’! 그의 영상이 뜨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팬들 사이엔 ‘또릿고개’란 신조어도 탄생했다.

‘눈물 찬또’로도 불린다. 신동부 ‘지원사격’팀으로 나서 ‘내 마음 별과 같이’로 올하트를 받은 뒤 눈물을 참으려 두 눈을 찔끔 감는 모습은 ‘반복 재생’을 누르게 한다. 마지막까지 켜지지 않는 조영수 마스터의 ‘하트’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살짝 든 뒤 불이 들어온 걸 확인한 이찬원의 감격은 정수리에도 새겨져 있었다. 덕분에 ‘별또배기’란 애칭도 만들어낸 ‘내마음별’ 직캠은 팬들이 꼽은 최고의 ‘덕후짤’ 생성 콘텐츠다.

유난히 정 많은 성격도 ‘찬또홀릭’을 부른다. 이미 고등학교 땐 회장으로,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부학생회장으로 친구들에 둘러싸여 산다는 이찬원. 장민호 노지훈 류지광 등에게 “잘생긴 형님~”은 기본, 말투엔 세상 애교란 애교는 다 긁어모은 듯하다. 깨물하트 애교 3종 세트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아이돌부, 현역부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친분을 과시하는 ‘인싸’중의 ‘핵인싸’. 임영웅 인스타 라방(라이브방송)에도 들어와 “어디십니까 형님~ 영탁 형님 집으로 오세요”라고,  아이돌부 황윤성에겐 “그럼 우리 서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네”, 추혁진에게 “형 제 마음속으로 빨리 들어오세요~  제 마음 속에 오랬는데 왜 자요 ㅋㅋㅋ”라며 심쿵 멘트를 거침없이 날린다.

◇ 다시 끝까지 살아내야 남자다~잉!

대구에서 태어난 이찬원은 열두 살이던 2008년 ‘전국노래자랑’ 대구 중구편 우수상으로 얼굴을 알린다. “트로트에 살고 트로트에 죽는다”며 진행자 송해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더니 서로 “행님”이라며 만담 모드로 변한다. 미래를 내다본 걸까. 송해가 “대구는 인물의 고장이라던데. 이름을 보니, 원 없이 찬란하게 비친단다!”라고 덕담하니 맹랑한 찬원이 엄범덤벙 받아챈다. “하이고~ 고맙심다. 내 이름이 이래~ 좋은 뜻이 들어가 있는지 몰랐심~더.”

이후 2013년 고등학교때 출연한 전국노래자랑 인기상에 이어 2019년 최우수상까지 실력도, 외모도 진화한다. 영화 ‘슈퍼맨’에서 고지식하고 순수한 클라크가 안경을 벗으면 수퍼맨이 되듯, 어느새 안경을 벗고 더 단단해진 트로트 근육으로 중무장한 이찬원은 ‘트로트 수퍼맨’으로 우리 앞에 섰다.

이찬원이 빠르게 팬을 흡수한 건 ‘90년대생 이찬원’이 보여주는 ‘이찬원식 욜로’(YOLO) 덕분이기도 하다. ‘주류’ 대신, 비록 자기가 가는 길이 변방이거나 외면 받을지언정 꾸준히 파고들면 인정받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희망. 운이란 것도 결국 준비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성찬이라는 걸 이찬원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남진의 ‘남자다잉’ 가사처럼 “그러나 말거나 견디고 버티고, 위하여, 우리는 살아있어, 위하여, 오늘도 살아있어”라는 이찬원의 목소리는 트롯 외길인생을 걷기로 한 스스로에 대한 건배사다.

그의 유튜브에 올라 있는 홀로 노래방 연습 영상에선 누가 보든 말든 정중히 인사를 하며 트로트에 대해 경건함을 표한다. 그의 무대 매너는 ‘미스터트롯’에서도 소문났다. ‘잃어버린 30년’을 부른뒤 무거운 마음이었을 텐데도, 좌우 앞뒤로 김성주 MC에게 꾸벅 인사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그의 범절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미스터트롯' 이찬원

◇ 주량은 스포이드 만큼, 사랑은 드럼통 만큼

트로트 외의 것은 거추장스러운 청년이다. 왠지 ‘혁띠’라고 불러줘야 할 벨트에, 홈쇼핑 3만9900원의 신화를 일군 잭필드 3종세트 느낌의 바지에도 그의 미모는 가려지지 않는다. 단벌신사에 애착 구두는 유명하다. 연습실에도 항상 ‘그 구두’를 신고 오고,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그 구두가 동행한다. 외투 역시 언제나 그 옷이고, 미스터 트롯에서 제공한 협찬 의상을 매번 입고 나타난다. 이런 그가 피아노 치면서 입었던 비바 스튜디오 후드티는 그걸 빠르게 알아본 팬들 주문에 품절 사태. 연습실 사진에 등장한 양말 역시 줄무늬 새겨진 디자인을 알아본 팬들이 ‘찬또 양말’이라며 몰려들었다가 친구 양말을 빌려 신은 게 알려진 해프닝도 있다.

그에게 트로트는 삶이고, 이찬원 그 자체다. 트로트에 녹아 있는 속 깊은 정을 그는 몸으로 표현한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을 수 있는 트로트의 흥처럼 사람 좋아하고,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한다. 대구에서 막창집을 하는 부모님을 응원하며, 자신의 사인에 가족 이름을 모두 집어넣는 게 바로 이찬원 방식의 애정 표시다. 인스타 라방(라이브방송)에선 주량이 ‘스포이드’ 만큼이라 (믿거나 말거나!) 말했지만, 사람과의 만남에 쏟는 사랑은 드럼통이다.

만 스물셋 군필이란 조건도 팬 몰이에 더할 나위 없다. 마냥 아이처럼 순수해 보이지만, 혹시라도 이찬원의 ‘다른’ 모습이 궁금하다면 영남대생이 모여 만든 웹예능드라마 콘텐츠 제작 채널 ‘썸데이컴퍼니’의 ‘썰 온에어’ 이찬원 편을 보시라. 신체 사진을 실수로 여사친에게 잘못 보냈다 결국 연인이 되었다는 대학생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그는 이렇게 던진다. “만약 ‘그분’이 작았다, (이상한 생각 금물) 그러니까 근육이 작았다면 그죠? 신체라는 게 매력을 어필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원 없이 찬란하게 온갖 재능을 자랑하는 미운 사내, 찬또다잉. 그도, 남자다잉~.

'미스터트롯' 이찬원

◇ 주변 3인이 말하는 “이찬원은 OOO다”

□ 썸데이컴퍼니 고혁민 감독(25·영남대 졸업·29초 영화제 장려상 수상)

이찬원은 ‘10초의 사나이’다. 끼가 많다는 걸 알아채는 데 10초도 안 걸린다. 처음엔 서먹해 보이지만 할 말 다하는 스타일이었다. 이 사람은 진짜다, 진국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교성이 좋고, 흔히 말하는 ‘인싸’다. 학교 콘텐츠 제작팀에서 예능 콘텐츠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와 이찬원을 섭외하게 됐다. 각종 행사 MC를 많이 봤다고 들었다. 방송 기질이 천성인 사람이었다. 살짝 수위가 ‘센’ 발언은 찬원씨가 알아서 거침없이 해준 부분이 많은데, 방송이니 최선을 다해준 것 같다. 이찬원 출연은 단 두 편이지만, 미스터트롯 인기에 새로운 연령층이 유입되고, 조회수도 ‘역주행’하고 있다.

□ 정대규 미스터트롯 스타일 디렉터

이찬원은 ‘불평불만 제로의 츤데레’다. 유독 의상 체인지가 많았던 출연자다. 트로트 프로그램은 전 세대에서 거북함 없게 의상 조절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라, 공연 전 제작진 PD 작가들과 최종 점검을 하면서 옷을 바꾸고 또 바꾸고 그러다 제일 처음에 입은 걸 입기도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성격도 생긴 모습 그대로, 무얼 하더라도 불평불만 없이 끝까지 묵묵히 따라와준 수수하고 착한 친구다. 남진의 ‘남자다잉’ 의상도 흰색 슈트에 진핑크 도트 포인트 의상을 제작했는데, 너무 화려해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 흰색 슈트를 한 벌 더 제작했지만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옷도 굉장히 잘 소화해냈다. 그래도 여전히 패션엔 그다지 관심 없어 보인다. 초반 웰메이드에서 협찬해준 슈트를 우리가 가봉 해준 적이 있는데, 초창기에 그 옷만 줄창 입고 왔다. 구두, 외투도 항상 같다. 그래서 리허설 전날이나, 의상 피팅할 때 항상 ‘찬원이 구두 없음. 꼭 협찬 부탁드립니다’라고 메모해놓는다.

□ 전금례(네이버 이찬원 팬카페 ‘찬원마을’ 부매니저)

이찬원은 ‘마성의 미완성’이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춤, 표정, 퍼포먼스까지 완벽에 가까운 무대를 만들어내는데 이찬원은 바들바들 떨기도 하고, ‘춤’이 아닌 율동을 덩실덩실 추는 게 모성애를 자극한다. 귀여운 강아지 상에 목소리는 청국장처럼 구수한 매력을 보이니 그 누가 반하지 않겠는가. 나는 건강기능식MD가 직업인 30대다. 전금례는 가명이지만 이찬원이 ‘댓글읽기’ 영상에서 “저 이분 알아요”라고 말해 실명조차 전금례이고 싶다. 팬클럽 찬원마을이 생긴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벌써 회원수가 8000명을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 광고에 이어 컵홀더에 이찬원 얼굴과 응원 메시지를 인쇄해 서울 경기 대구 지역 6개 카페에 컵홀더를 배포하고 홍보를 진행했다. 이찬원 맞춤 정장도 제작 중이다. 미스터트롯 콘서트를 대비해 응원봉, 슬로건 등 응원도구를 제작하고 있고, 이찬원의 고향으로 코로나와 사투중인 대구에도 기부를 계획하고 있다. 이찬원이 BTS 같은 스타가 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찬원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코로나 극복 응원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