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지음 이주영 옮김|시공사|400쪽|1만7000원

허겁지겁 건물 안으로 뛰어든 사람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미친 듯이 누른다. 쓸데없는 짓이다. 천천히 한 번 누르든, 다급하게 여러 번 누르든 엘리베이터는 최초의 터치에만 반응하고 정해진 속도로 움직인다. 오히려 주변에 준비성 없이 허둥대는 사람이란 인상을 주는 멍청한 행동일 뿐이다. 그런 사람을 보며 혀를 차는 당신도 멍청함의 포로이긴 마찬가지. 멍청함은 인간의 본성이란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보통 사람도 하지 않을 멍청한 짓으로 손가락질당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랑스 심리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멍청함의 다양한 속성을 알아보기 위해 독특한 시도를 했다. 멍청함을 탐구하는 학자들을 인터뷰하거나 이 주제로 글을 받아 책으로 묶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등 28명과 함께 개인적인 멍청함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를 해체하는 집단적 멍청함까지 두루 분석했다. "옛날이 더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과거에 사로잡힌 멍청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 기억을 지우고 긍정적 기억만 남기는 인간 속성의 노예여서 미래를 계획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을 믿지 못하는 것도 멍청함의 증거다. 그런 사람은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탔을 때 불안해하며 잠도 못 자지만 정작 자신이 운전대를 잡으면 졸음에 빠진다. 교만의 덫에 걸린 멍청이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은 자기는 개를 키우지 않으면서 남에게 개 키우는 법을 충고하고, "비행기 조종? 버스 운전과 다를 게 없지" 같은 헛소리로 자신의 멍청함을 폭로한다.

멍청함은 자기가 속한 사회까지 병들게 한다.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매사 틀에 박힌 사고를 하고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모순되는 두 개의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신중함의 미덕을 몰라 "다 썩어빠졌군" "전부 장사꾼일 뿐이야" "기자? 비굴한 인간들이잖아"란 식으로 세상사를 거침없이 재단한다. "아는 것이 적을수록 확신이 커지는 탓"이다. 음모론에도 쉽게 빠져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식으로 타인을 매도하고 억울한 희생자를 만든다. 연기가 나는 진짜 이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멍청이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발 냄새가 나면 내 발이 아니라 양말에서 냄새가 난다고 믿는다. 과속 단속에 반복해서 걸려도 자신의 운전 습관이 아니라 "운이 나빠서 걸렸다"며 상황을 탓한다. 고용주라면 결코 이런 사람을 뽑아선 안 된다. 자기를 과대 포장하는 성향 탓에 성희롱 사고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을 다른 말로 바꾸면 '다 네 탓'이 된다. 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외부의 적을 찾는다. 이민자를 탓하고 여성과 유색인, 사회적 소수자를 비하한다. "여자는 여자일 뿐" "유대인은 유대인이다"처럼 'A=A' 식의 사고 패턴을 보인다. 포퓰리즘 정치가의 좋은 먹이다. 이들은 자신의 분노를 사회 지도층에 돌리고, 그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놓은 지도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팩트와 지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지도자에 끌려 정치를 타락시킨다.

필자 중 ‘탈진실’ 현상이 세상을 멍청한 곳으로 만든다고 분석한 신경심리학자 세바스티앙 디게의 글이 이목을 끈다. 그는 현대인이 정확하고 옳은 말이나 신중한 태도보다는 당당하고 열정적이며 감정에 호소하는 태도에 호감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이 때문에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인 믿음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이런 멍청한 성향을 더 멀리 빠르게 퍼뜨린다. 자신을 돌아보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잣대로 삼기에도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