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가 라면 부순 걸 먹고 있더라고. 짠해서 한 끼 먹여 보냈지. 근데 그 뒤로도 오가다가 눈에 띄기에 와서 먹으라고 그랬지. 나도 혼자 먹으면 적적하니까."
소파에 늘어져 느긋하게 '아이 캔 스피크'를 보다가 갑자기 좀 울컥했다. 나옥분 할머니(나문희 분)가 밥상을 내오는 장면이었다. 고등어 구이에 된장찌개, 김과 김치 등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차림을 보고 다른 밥상의 기억도 솟아 올랐다.
2012년 5월, 전남 구례에서 받은 밥상이었다. 당시 제빵사부터 바텐더까지, 맛을 책임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재를 하고 있었다. 쌀이며 곶감 등을 주문해 먹던 농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구례까지 내려갔다. 하필 모내기 날이어서 농부 부부와 자녀 육 남매 대부분이 모인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여럿과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함께 먹었다. 8년 전의 밥상이지만 아직도 화사하도록 쌉쌀한 취나물과 짭짤하고도 구수한 바지락 된장찌개를 선명히 기억한다.
나옥분 할머니는 환영받지 못하는 외톨이다. 시장에서 수선집을 꾸려 생계를 해결하는 그는 오지랖이 넓다 못해 발에 걸려 넘어질 지경. 지역 공동체의 안전 요원 역할을 자임한다. 생업인 수선을 할 시간이 나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일터와 거주지를 부지런히 헤집고 다니며 문제를 찾아 구청에 집요하게 민원을 넣는다. 그렇게 가족 없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자 몰두하는 가운데, 한편으로 영어 공부를 희망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민원을 맡게 된 구청의 신입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분)가 영어 실력이 출중하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확인하고는 교습을 부탁한다. 민재는 처음에는 할머니의 부탁을 외면하지만, 행적이 의심스러워 할머니의 뒤를 밟다가 고교생 동생의 밥을 챙겨주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보답으로 할머니에게 영어를 가르쳐드리기 시작한다.
밥상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는 왜 8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울컥했을까. 8년 전 구례에서의 그날 이후 집밥을, 그것도 내가 차리지 않고 남이 차려준 집밥을 여러 사람과 나눠 먹은 적이 없었다. 말하자면 적어도 현재까지는 일종의 '마지막 식사'인 셈이다.
그랬구나 싶어 기억을 조금 더 되짚어 보니 나는 이런 장면에서 대체로 울컥한다는 점도 새삼 깨달았다. 여러 명이 두런두런 앉아 밥을 나눠 먹으며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상황 말이다. 메마를 대로 메마른 인간이다 보니 감성을 자극하는 매체에 대체로 무감각하지만, 나눠 먹는 밥이나 오랜 여정 끝의 귀가, 재회 등의 장면에서는 미약하나마 감정에 북받치곤 했다.
그래서 밥은 다 같이 모여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을 하려는 걸까?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공공기관이 폐쇄되고 결혼식 식사 제공도 자제하자는 판국에 같이 밥 먹기란 위험한 행동 아닐까? 게다가 나는 음식평론가로서 혼밥의 미덕을 늘 역설해오지 않았던가?
맞는다, 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함께 밥을 먹기에 안전하지 않으니 혼밥이 최선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현 시국의 혼밥이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코로나19 이전까지 혼밥은 갑갑한 삶 속에서 가끔 숨통을 틔워주는, 선택적인 외로움의 시간이며 식사였다. 늘 사람들과 부대낄 수 없는 상황에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하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주는 양식으로서의 혼밥이었다. 밥과 나 단 둘이서만 가지는 대화의 시간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많은 이 앞에 놓인 혼밥은 선택적인 외로움의 산물이 아니다. 정반대로 절대적인 외로움이 강권하는 절대 고독의 끼니이다. 발병 가능성 탓에 14일의 자가 격리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하루 세 끼를 모두 먹는다면 42번일 혼밥을 앞에 놓고 과연 어떤 마음이 들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이들은 격리되었더라도 일상의 식사를 이어 나갈 테니 이해의 가능성이 실낱만큼은 있다. 그러나 확진 환자들은 어떨까. 의료진이 최선의 최선을 다해 돕고 있지만 두려움의 벌판에서 고립된 마음의 혼밥을, 그나마 감당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선의 최선을 말하니 정은경 질병관리 본부장의 수척해지는 얼굴도 떠오른다. 그나마 정 본부장은 우리가 그 존재와 이름, 얼굴을 알고 있다. 자체적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대응하고 있다는 경북 청도 대남병원 직원들을 비롯, 얼굴을 알려야 알 길 없는 많은 이가 지금 이 시각에도 사투를 벌이고 있다. 상황이 개선될지 확신조차 품지 못한 채 따로 또 같이 모래알 같은 혼밥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때우는 한 끼, 마스크를 턱까지만 내린 채로 급히 집어 넣는 빵 조각, 두 젓가락 간신히 건져 먹고는 놓고 나간 컵라면, 과로를 이겨 내느라 삼키는 미지근하고도 밍밍한 커피…. 생활인과 직업인 양쪽 측면의 상상력이 뒤범벅이 된 채로 현 상황과 직접 관련 있는 이들이 맞닥뜨리고 있을, 수없이 많고 또 다른 혼밥의 양상을 지난 며칠 동안 떠올렸다. 그리고 심한 무력감에 시달렸다. 나라는 음식평론가는 맛없음에 대해 씀으로써 역설적으로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데 도움이 될 담론을 펼치는 사람인데, 현 시국에서 과연 그런 게 필요는 한 건가 싶어 그저 멍했다.
글이 영화의 스포일러가 되기를 원치 않으므로 결론만 말하자면 나옥분 할머니는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타인이 모두 헤아리기란 불가능할 아픔의 삶이었지만 영어 실력을 갈고닦아 목표를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동생과도 몇십년 만에 재회했다.
영화라면 스포일러를 금지하겠지만, 현 시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 같은 범부는 감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건만 해피엔딩의 스포일러를 A4 용지에 큰 글씨로 찍어 호외처럼 마구 뿌리며 다니고 싶다.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사태가 종식되어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노라고.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밥상이 기다리고 있든, 적어도 절대적인 외로움의 혼밥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