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경력 합계 100년이 넘는 재판부가 법원에 등장했다. 재판부는 3명의 판사로 이뤄진다.
최근 법원 인사로 서울고법 민사 25부에는 법원장을 지내고 재판부로 복귀한 최고참 판사 3명이 모였다. 박형남(사법연수원 14기·35년), 윤준(16기·33년), 김용석(16기·33년) 부장판사 등이다. 이들의 법조 경력을 합하면 101년.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의 연수원 평균 기수(16.2기)보다 높다.
이들은 각각 전주지법원장, 수원지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을 지냈다. 2012년부터 '평생 법관제'를 시행하면서 법원장을 지낸 뒤에도 은퇴하지 않고 일선 법원으로 돌아와 재판 업무를 하고 있다. 법원장 출신만으로 재판부가 꾸려진 것도 처음이다.
이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대등 재판부'에 자원했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하는 대등 재판부는 재판장과 배석 판사로 구성하는 합의부와 달리 재판장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법원 관계자는 "후배 판사들을 거느리면서 재판장을 맡기보다 비슷한 연배와 같이 일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식사 장소를 정하는 '밥 총무' 역할도 나눠서 하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는 대등 재판부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작년보다 대등 재판부가 4개 늘어 14개가 됐다. 지난달 중앙지법 부장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는 합의부보다 대등 재판부 순위가 높았다고 한다.
합의부 재판장은 배석 판사 판결문을 고치기만 하면 되지만 대등 재판부는 직접 판결문을 써야 한다. 그런데도 왜 고참 판사들은 대등 재판부를 택하는 걸까. 한 부장판사는 "배석 리스크 때문"이라고 했다. 일과 삶의 조화를 뜻하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조금이라도 일을 재촉하면 금세 배석들 사이에서 성질 고약한 '벙커' 부장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배석 판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자신이 '벙커'로 지목당한 내용을 전달받고 크게 상처받은 부장판사도 있다고 한다. 대등 재판부 도입은 법원의 인사 적체 해소 목적도 컸다. 그런데 의외의 선호 부서가 되자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 내 세대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