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강동구 주택가의 어느 불 꺼진 경로당.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코로나) 때문에 나흘 전 무기한 휴관에 들어간 곳이다. 그런데 잠겨진 출입문 안쪽에서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기자가 문을 두드린 뒤 "어떻게 들어가셨어요?"라고 묻자, 안에서 노인 3명이 쭈뼛쭈뼛 문을 열고 나왔다. "너무 답답해서 그랬다. 다신 안 그러겠다"며 "체온계, 마스크를 전부 챙겨 왔다"며 울먹였다. 현재 서울시 내 모든 경로당은 우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무기한 휴관 중이다.

'감염 위험이 있는데 왜 경로당에 모이셨느냐'는 물음에, 이들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혼자 사는 A 할머니(83)는 이틀간 허리 뒤쪽에 파스를 붙이지 못했다. 끙끙 앓다가 도저히 참지 못해 무작정 경로당으로 향했다. "휴관 소식은 들었지만 친구들 집도 모르고 막막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때마침 경로당 앞에서 비슷한 처지의 관리자 B 할머니를 만났다. 열쇠를 가지고 있던 B 할머니는 문을 따서 들어갔고, 지나가다 말소리를 들은 C 할아버지가 합류해 서로 파스를 붙여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해가 졌다. 이들은 "전화로 수다 떨 가족도 없는 우리에게 일주일간 집에 혼자 있으라는 건 지옥"이라고 했다.

우한 코로나 확산에 맞서 전국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관내 공공시설을 무기한 휴관시켰다. 제1 타깃이 감염에 취약한 노인 시설이었다. 서울시는 대표적 노인 쉼터인 탑골공원 출입문을 20일 걸어 잠갔고, 이튿날엔 노인종합복지관·종합사회복지관·경로당 등 3601곳을 휴관 조치했다. 대구·인천 등 다른 지자체가 뒤를 이었다. '노약자는 사람 많은 곳을 피하라'는 중앙정부 지침도 나왔다. 하지만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질병과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게 외로움이었을까. 노인들이 야외에서, 혹은 경로당에서 삼삼오오 만나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경로당 인근, '3월 1일까지 휴관한다'는 안내문 앞에서 노인 20여명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스크를 낀 채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었지만 간간이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날 서울 최고기온은 11도. 야외에 1시간 이상 있기에는 추운 날씨였지만, 이들은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입을 모았다. 아내를 지방에 보내고 혼자 산다는 이모(67)씨는 "21일 휴관한 뒤 매일 여기에 돗자리 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논다"며 "경로당이 없어도 사람이 모이는데, 차라리 경로당을 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복지관과 상관없는 곳에도 몰린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다산공원에는 노인 약 15명이 벤치에 줄줄이 앉아 있었다. 모두 초면(初面)이라고 했다. 갈 곳이 없어 집 밖을 산책하다가 동년배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모이다 보니 15명까지 불었다고 한다. 그들 중 한 할아버지(69)는 "문화센터, 복지관, 경로당 등 갈 수 있는 곳은 다 문을 닫았다"며 "이야기 나눌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 추워도 버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원에서 홀로 우두커니 사람 구경에 서너 시간씩 보내는 노인도 많았다. 서울 서대문구에 혼자 사는 정모(79)씨는 방 하나 딸린 15평 남짓한 집이 싫다고 했다. 3년 전 같이 살다가 한밤에 쓰러져 하늘로 간 친구 '경숙이'(가명)가 생각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 경로당은 정씨의 안식처가 됐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6만~7만원을 3㎞ 거리에 있는 경로당 왕복 버스비로 쓰며 오후 8시쯤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자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러나 일주일 전 경로당이 문을 닫았다. 지금은 1시간 정도 집 밖 벤치에 앉아 있는 게 전부다. 정씨는 "집에 혼자 있으면 (경숙이가) 쓰러져 있던 게 생각난다"며 "요즘은 하루가 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외롭겠지만 잠시만 참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식적인 방역망을 넘어서는 것은 위험하다"며 "디지털 기기를 이용할 줄 아시는 어르신은 그것으로 소통하거나, 애완동물에게라도 의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취재하며 만난 노인들은 "우한 코로나보다 적막한 집이 더 무섭다"고 했다. 강동구에서 만난 어느 노인은 기자를 공무원으로 착각한 듯, 이렇게 말했다. "마스크를 잘 끼고 손 소독제도 잘 바를 테니 친구들 만날 방법이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