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을 "인민 전쟁"이라고 부르며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해온 중국 정부가 24일 방역 조치를 완화하고 나섰다. 바이러스 진원인 후베이(湖北)성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신규 감염자가 줄어들었다는 게 공식적인 이유다. 하지만 생산·소비 활동이 더 지연될 경우 경제가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중국 지도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바이러스가 완전히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억 명이 사무실과 거리로 나오면서 바이러스가 재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시진핑(맨 윗줄 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우한 코로나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시 주석 등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이다.

중국 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24일까지 중국 31개 성(省)·시(市) 가운데 6개 성이 우한 코로나 위기 경보 단계를 낮췄다. 중국은 국가 전염병 방지법에 따라 1~4급의 위기 대응 단계를 발표하고 대응 조치를 한다. 1급이 가장 심각한 경우다. 우한 코로나가 확산하자 중국 31개 성·시는 모두 1급 위기 경보를 발령·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날 광둥·산시성은 위기 경보 수준을 1급에서 2급으로 한 단계 낮췄다. 앞서 지난 21~24일 랴오닝·간쑤·구이저우·윈난 등 4개 성은 1급 경보를 3급으로 조정했다. 위기 경보가 낮아지면 지휘 체계가 바뀐다. 1급 경보의 경우 중앙 정부인 국무원 지시를 받아 각 성 정부가 지휘하지만, 2급에서는 각 성 정부가, 3급이 되면 시(市)·현(縣) 정부가 방역을 지휘한다.

각 지방 정부가 위기 경보 단계를 낮춘 것은 한때 하루 800명이 넘던 후베이성 이외 지역 신규 감염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보건 당국에 따르면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 30개 성·시에서 신규 감염자는 23일 11명을 기록했다. 지방 정부들이 외지 차량 진입을 금지하고 귀성객에 대해 14일 자가 격리를 요구하는 등 이동을 통제한 결과다.

경제보다 방역에 치중했던 분위기는 지난주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 내 공장 가동률이 50~60%대에 머물자 국무원은 공장 가동 재개를 촉구했다. 공장이 밀집한 연해 지역 지방 정부들은 전세 버스까지 마련해 근로자들을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3일 열린 우한 코로나 대책 회의에서 방역 작업을 강조하면서도 "생산·생활 질서를 잘 회복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 회의에는 시·현 단위 간부를 비롯해 전국 관리 17만명이 화상회의 형식으로 참석했다. 시 주석 등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이날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들이 공장과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감염이 다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베이징에 위치한 온라인 커머스 회사인 '당당왕'은 직원들을 사무실에 복귀시켰다가 직원 1명이 19일 확진 판정을 받자 직원 200여명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주말이었던 22~23일에는 쓰촨 등에서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공원으로 몰려나온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혁명 기념지로도 유명한 베이징 샹산(香山)공원은 관광객이 몰려 주차장까지 만석이 되자 23일 저녁 "당분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방 정부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1월 23일부터 도시 출입을 전면 차단해 온 우한시는 이날 오전 사전 허가를 받은 사람에 한해 도시 출입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애초 "도시 운영, 생산·생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통행을 재개한다는 공고를 냈다가 3시간 후 "충분한 연구를 거치지 않았다"며 없었던 일로 한 것이다.

한편 중국은 다음 달 초 개최 예정이던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연기하기로 이날 최종 결정했다. 중국 최대 연례 정치 행사인 양회가 연기되는 것은 1980년대 양회 제도가 현재 모습으로 안착된 이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