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다들 마스크를 낀 채 눈만 내놓고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레이저 시선이 날아간다. 타박은 마스크 표정이 대신한다. 버스 안에서 여럿이 겹쳐 있지만 묘하게 그 안에서 서로 떨어져 있다. 출근길 풍경은 자못 영화 속 장면 같다. 바이러스 숙주인 사람이 다가오는 게 꺼려지는 요즘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뇌도 없는 0.1마이크로미터 생명체가 만물의 영장 인간의 삶을 눈에 띄게 바꿔 놓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감췄던 모습 드러나

중국발 코로나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콕 짚어 들춘다. 대남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한 사람은 20여 년간 입원해 있던 정신질환자였다. 그는 죽어서야 병원을 나온 셈이 됐다. 우리나라에 이런 장기 입원 정신질환자가 곳곳에 있음을 코로나가 일깨운다. 그들을 품을 동네 시설과 인프라가 우리에겐 없었다. 좁은 공간서 여럿이 지내고 누워 있는 날들이 많았으니 면역력은 떨어져 있다. 그 틈으로 코로나가 들어갔으니 폐렴 희생자가 계속 나올 가능성이 크다. '메르스 낙타'가 밀집된 응급실, 무분별한 병문안, 후진적 가족 간병을 골라서 밟고 지나갔던 것처럼 말이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한방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병원 밖 세상을 돌아다녔다. 요즘 교통사고 '나이롱 환자'가 많다고 하더니, 코로나가 딱 찍었다. 명색이 신도 20만여 명인 신천지 예수교 총회장은 "금번 병마 사건은 마귀의 짓"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면 방역 당국 역학조사원이 마귀부터 잡아서 행적 조사를 벌여야 한다. 21세기서 중세 마귀 얘기가 공개적으로 나온다니…. 하기야 신천치 교인들도 코로나 피해자이다.

요새 우리는 사람 손 닿는 곳을 손대기가 꺼림칙해졌다. 엘리베이터 1층 버튼은 손가락 구부려 관절로 누르거나 키(key)로 찌른다. 팔꿈치는 밀치는 문 여는 데 쓰인다. 반가운 이와의 악수도 주저하게 된다. 흡연자들은 죄다 밀폐된 흡연실 밖으로 나왔고 침방울 날리는 시술을 하는 치과 의사들은 고글을 덧쓴다.

이제 우리는 매일 체중을 재듯 체온도 재야 한다. 36.5가 고마운 숫자로 다가온다. 그동안 몸무게에 집중하느라 몸 온도는 관심 밖이었다. 호흡기 바이러스가 체내로 들어오면 살기 위해 증식한다. 그 과정서 발열 염증 물질이 나와 체온이 오른다.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는 징표다. 37.5도 이상이 지속되면 감염 용의자로 분류된다.

체온은 수시로 변한다. 오후 3~5시에는 용의선상까지 오르고, 잠이 든 새벽 4시에는 정상 밑으로도 떨어진다. 고령자는 체온 변화가 적어 열 없다고 폐렴 없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체온 상승이 빠른데 잘 놀고 웃으면 그리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기분 변화도 체온과 피부 표면 온도에 영향을 미친다. 열감지 적외선 카메라로 기분에 따른 체온 변화를 측정한 실험에서 흥분과 기쁨은 얼굴 부위 온도를 올린다. 울어도 그렇게 된다. 우울증이 있으면 팔·다리가 차갑게, 공포를 느낄 때는 가슴 쪽이 뜨거워진다.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듯 얼굴 표면 온도는 수시로 변한다. 외부 기온에도 영향을 받기에 체온을 정확히 재려면 귀 안쪽 고막이나 손목 안쪽 상단을 재는 게 좋다.

바이러스와 전쟁… 자만과 불안이 변수

바이러스는 평등하다고 할까. 국적과 지위 막론, 누구나 코로나 감염자가 될 수 있다. 어느 날 확진자가 된다면 영장도 없이 당신의 신용카드 내역이 드러나고 휴대폰 위치가 추적된다. 이름 대신 3번·29번·31번 등 번호 인간으로 불리게 된다. 범죄자가 되어 사회와 격리되는 느낌이 코로나 감염을 두려워하는 본질이지 싶다.

기생충은 숙주를 죽이지 않는다. 숙주가 죽으면 자기도 죽는 걸 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생물 기생충'과 무관한 설정이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기생충의 속성이 있어 보인다. 사스(SARS)는 독해서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숙주와 함께 사라졌고, 신종 플루는 약해서 지금도 돈다. 이번 코로나는 전염력은 강하나 치사율이 낮은 쪽이다. 숙주를 돌며 오랜 기간 지구상에 살아 있을 조짐이다. 그러니 체온 올라가게 흥분하지 말고, 과학과 의학으로, 개인 위생 준수로, 저(低)밀집 사회활동으로, 차분하게 하나하나 줄여 나가면 된다. 근거 없는 자만감과 과도한 불안, 허둥지둥이 마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