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1만배 뛰어난 후각으로 실종자 찾아
훈련 성공 뒤엔 '폭풍' 칭찬과 사료로 보상
자질·훈련·평가 통과해야 정식 구조견 가능
대형견 무서워하는 사회 분위기는 우려

18일 오후 눈 덮인 산 중턱에서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들렸다. 방울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쓰러져 누워있던 실종자의 눈 앞에 인명구조견 왕건(6·마리노이즈)이 나타났다. 왕건이는 핸들러(구조견 운용자)가 반응할 때까지 우렁차게 짖었다. 왕건이에게는 ‘폭풍’ 칭찬과 사료가 주어졌다. 119 인명구조견의 ‘설상(雪上) 수색’ 시뮬레이션 훈련이다. 실종자 역할을 맡았던 기자에게 왕건이의 방울소리는 생명의 동앗줄처럼 느껴졌다.

18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에서 진행된 119인명구조견 혹한기 훈련에서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구조견 티나(3·래브라도 리트리버)가 핸들러의 수신호를 따라 달리고 있다.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는 지난 17일부터 강원도 고성군 일대 산지에서 강원 119특수구조단과 함께 인명구조견 혹한기 훈련을 시작했다. 중앙119구조본부는 대구광역시에 있어 눈사태 매몰자 수색 훈련이 어려운 탓에, 구조견들은 매년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에서 현지 훈련을 받는다. 열흘 간의 이번 혹한기 훈련에는 현역 구조견 6마리와 훈련견 7마리가 참여한다.

박영도 중앙119구조본부 인명구조견센터장은 "수색현장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찾아다니며 연 2회씩 현지훈련을 해오고 있다"며 "전국에 28마리의 구조견이 있는데 규모를 점차 늘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28마리의 구조견들은 지난해 모두 806차례 출동해 생존자 17명과 사망자 27명 등 44명의 실종자를 찾아냈다.

◇ 장시간 이동·식사마저도 훈련의 일부… 24시간이 '출동 대기'
18일 오후 찾은 고성군 일대 산지에는 전날 내린 눈이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여 있었다. 기온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져 한파특보가 내려졌지만, 훈련에 나선 견공들과 핸들러들은 추위를 잊은 모습이었다. 이들은 전날 오전 대구 중앙119구조본부에서 출발해 380㎞를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 이민균 훈련관은 "장시간 이동도 훈련의 일부"라며 "구조견들은 수색 요청이 들어오면 전국으로 급파돼 장시간 이동 후 곧바로 수색에 투입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훈련은 매몰자 수색과 이격(離隔) 거리 배양 훈련이었다. 이격 거리 배양 훈련은 구조견이 핸들러와 떨어져 수백미터가량을 홀로 수색하는 훈련이다. 훈련에 앞서, 매몰자 역할로 낙점된 황창선 대원은 방한 매트를 몸에 두르고 눈 속에 완벽히 묻혔다. 육안으로는 황 대원을 전혀 찾을수 없었다.

"마루! 히앗!" 하며 최헌 핸들러가 수신호하자 베테랑 구조견 마루(8·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사람 냄새’를 따라 100m 거리를 단숨에 내달렸다. 황 대원이 ‘매몰된’ 곳 주변을 킁킁거리며 맴돌다 멈춰서더니 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사람을 발견하자 파헤치기를 그만두고 "멍멍" 짖었다. 수색에 성공한 마루는 칭찬과 좋아하는 간식을 받았다.

구조견은 인간보다 1만배 뛰어난 후각을 갖고 있어 사람의 냄새로 실종자를 찾는다는 것이 119구조본부 측 설명이다. 최 대원은 "사람 냄새는 바람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핸들러는 바람의 방향을 판단해 구조견에게 수신호한다"며 "실종자를 찾은 구조견은 짖어서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짖도록 훈련받는다"고 했다.

이어서 진행된 이격 거리 배양 훈련에선 수색 범위가 더 넓어졌다. 실전에서는 구조견 홀로 산 전체를 수색해야 할 상황이 많아 이격 거리 배양 훈련은 필수적이다. ‘의식을 잃은 채 산 속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임무로 구조견은 등산객처럼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에 대해선 반응하지 않도록 훈련받고 있다.

18일 오후 한파특보가 내린 강원도 고성군 인근 산지에서 119인명구조견 혹한기 훈련이 진행됐다. 쉬는 시간을 활용해 구조견 왕건(6·마리노이즈)과 핸들러 황창선 대원이 복종훈련을 하고 있다.

◇ 타고난 자질 가진 개체 선별 후 2년간 훈련·평가 통과해야 '합격'
인명 구조견들은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선발된다. 훈련소 입소부터 쉽지 않다. 구조견의 자질을 타고나야 하기 때문이다. 생후 6~12개월된 훈련견 후보생들은 성향 평가와 건강검진을 통과해야 훈련견이 되어 훈련소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 이들은 군견, 경찰견, 반려견 전문가 출신의 훈련관에 의해 2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최종 평가에서 합격해 '현직'이 된다.

훈련을 통해 양성된 28마리의 구조견들은 지난해 모두 806차례 출동해 생존자 17명과 사망자 27명 등 44명의 실종자를 찾아냈다. 최헌 강원소방본부 소속 핸들러는 "우리 구조견들이 수색을 실패한 구역에서 실종자가 발견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구조견이 짖으면 그곳에는 항상 실종자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최 대원은 "우리 마루가 뛰어난 성과를 보일 때마다, 내 자식이 학교에서 상 받아 온 것 같이 뿌듯하고 예뻐죽겠다"고 덧붙였다.

소방본부가 본격적으로 직접 구조견 육성을 시작한 시점은 2011년 4월로 아직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대형견에 속하는 구조견은 시민들에게 아직 다소 낯선 존재다. 최근 개물림 사고가 잇따르면서 대형견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도 커져 고충을 겪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최헌 대원은 "국립공원처럼 방문객이 많은 곳에 수색을 나설 때가 있는데 ‘이런 데 개를 데리고 들어오냐’는 항의도 받고, 개를 보고 놀라 넘어졌으니 피해보상을 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며 "공격 훈련을 받는 군견, 경찰견과 다르게 구조견은 오로지 인명 구조만이 목표이기 때문에 절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