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야 어느 해외파 선수가 은퇴를 앞두고 K리그에 돌아오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표정과 말투는 덤덤했지만 발언 내용은 격정적이었다. 기성용(31)은 21일 인천공항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취재진에게 심경을 털어놓았다. 최근 유럽 프로축구 무대를 떠난 그는 새 보금자리를 찾아 FC서울, 전북 현대와 입단 협상을 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스페인 프리메라리가(1부 리그) 팀의 제의를 받아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계약 협상을 진행했다. 기성용은 "다른 옵션도 있었지만 K리그로 돌아가는 것을 가장 많이 생각했다"며 "모두 결렬돼 안타깝다. 팬들도 아쉽겠지만 내가 더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팬들도 아쉽겠지만 나도 힘들어"

기성용이 2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인터뷰를 통해 섭섭한 마음을 밝힌 뒤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모습.

기성용이 이적 시장에서 가장 먼저 접촉한 팀은 친정팀 서울이었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치는 연봉 조건과 구단의 미온적 태도에 실망했다. 전북과 벌인 협상도 깨졌다. 전북은 기성용에게 K리그 최고 대우를 제시했다. 하지만 그가 2009년 셀틱으로 진출할 당시 이적료 중 일부를 서울 구단에서 받았고, '국내 복귀 시 서울에 입단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물러섰다. 조항을 어길 경우 보상금은 200만유로(약 26억원)로 알려졌다.

기성용은 지난 11일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K리그 복귀 불발을 발표했다. 자기 인스타그램엔 '거짓으로 내게 상처를 준다면, 나는 진실을 가지고 너를 다치게 할 수 있다. 나를 가지고 놀지 마라. 내가 반격하면 네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영어 글을 남겼다.

기성용은 '거짓'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기사를 보니까 서울의 팀 구성이 완료된 다음에 내가 입단을 추진했다고 하는데, 잘못된 이야기다. 그 이전부터 서울과 얘기했다. 내가 '보상금 없이 전북에 보내달라'고 했다는 보도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기성용은 또 "이 팀이 나를 정말 원한다는 걸 느껴야 하는데 (서울에서) 그걸 못 느꼈다. 구단이 여건이 안 되고 조건이 부족하면 선수에게 마음을 담아 얘기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며 "이청용, 구자철 등도 K리그 복귀를 꿈꿀 텐데 이번 일을 보며 우려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선 "마요르카행 유력"

국내 팬들 앞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뜻을 앞세워 다시 복귀를 추진할 가능성은 없을까. 기성용은 "앞으로 한국에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며 "돈보다는 팬, 구단과 목적의식을 같이하며 뭔가를 이뤄내는 것이 특별한 가치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협상을 하며 내 생각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기성용의 행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스페인 1부 리그 팀이라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다"며 "프리메라리가는 예전부터 동경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갔을 때보다 더 설렌다"고 했다. 스페인 언론은 기성용을 영입하는 팀으로 마요르카를 꼽고 있다. 마요르카는 이번 시즌 라 리가에서 20팀 중 18위를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