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세 부국장 겸 여론독자부장

선출된 정치권력 앞에서 임명직 공무원들은 무력하다. 비단 현 정부뿐만 아니라 보수·진보를 망라한 과거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거칠게 권력을 휘두르면 관료들은 바람보다 빨리 몸을 숙여 영혼 없는 충실한 테크노크라트로 전락했다. 인사권자의 입맛에 맞춰 같은 사안을 순식간에 A 답안지에서 정반대의 B 답안지로 바꿔 그럴듯한 보고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최근 검찰 인사에서 보듯 최고 권력자는 맘에 안 드는 인물을 쳐낼 수 있고, 그걸 본 공무원 사회는 납작 엎드려 결국 순치되고 만다.

한때 우리 사회에는 경제를 정치의 입김으로부터 차단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 같은 것이 있었다. 사유재산권과 거래의 자유, 기업 활동과 이익 추구가 법의 보호 아래 작동하도록 정치권력의 이해와 침해에서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경제 관료는 이런 경제 원칙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국민의 대리인 역할을 하도록 기대되어 왔다. 그러나 경제 관료의 말은 언제부터인가 힘을 잃고 있다. 우리 사회가 쌓아 올린 번영의 철학과 원칙을 대변하지 못하고 종종 자의적 권력에 맞춰 조변석개하는 비루한 언어로 전락했다. 가령 9개월 전 홍남기 부총리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 채무 비율을 40% 선으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40%의 근거가 뭐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반박을 듣자 일주일 뒤 "내년에는 40%를 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을 바꿨다. 불과 6개월 전 신재민 전 사무관이 국가 채무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사실상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기재부가 적자 국채 발행을 계획했다는 목숨을 건 폭로는 권력자의 한마디로 아무 값어치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경제가 정치에서 독립하는 것은 권력의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경제 원칙과 시장경제의 작동을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지키려는 충만한 권력의 의지가 맹렬하게 작동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제가 처음으로 정치보다 우위를 점했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피를 부른 잔혹한 군사독재 정권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고 여기에 대한 역사적 심판도 끝났지만, 이와 별개로 이 시기에 어떻게 시장경제가 한국에 뿌리를 내렸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정당성이 없었던 정권은 필사적으로 경제에 매달렸고 다른 정치권력의 시장 간섭을 최고 권력이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김재익 전 경제수석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했던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말은 권력 이양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려는 강한 권력 의지의 표현이다. 그 이후 우리 경제가 정치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했던 시기는 외환 위기 직후 달러가 부족해 국제기구 눈치를 봐야 했던 기간 정도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는 정치 과정이었다. 사유재산권도 수많은 행동 규범과 법 제정, 집행이라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 오늘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경제학자 아바 러너는 "경제학이 (우아하게) 사회과학의 여왕 자리에 오른 것은 정치적으로 해결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최고 권력자의 철학이라고 봐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과 탈원전 정책이 무수한 비판을 받아도 수정이 없는 것은 대통령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합리적 경제 조언과 각론적 처방은 그냥 땅에 떨어지고 말 뿐이다. 노동 개혁과 규제 혁파가 한국 경제의 돌파구라고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철저히 정치의 영역이다. 경제가 살려면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최소한 주군의 눈과 귀를 가리는 주변 인물들이 문제라는 얘기는 말아야 한다. 크게 보면 그저 눈과 귀를 닫은 주군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