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원 모르는 29·30번째 환자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 커졌다
"코로나19의 중증도, 사스·메르스보다 낮아 환자들 활발하게 돌아다녀"
"동네 병·의원,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선별-경증-중증 진료 담당 나눠야"

해외여행 이력이 없고 환자 접촉자로 관리도 되지 않아 감염경로가 불명확한 국내 29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82세 남성, 한국인)의 아내(68세 여성, 한국인)가 17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최종 역학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29·30번 부부환자 모두 중국 등 해외 위험지역을 다녀온 적이 없고, 다른 코로나19 환자와도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사회 감염’ 확산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끝내 감염자와의 접촉 여부를 밝혀내지 못할 경우 일본 처럼 감염원을 알 수 없는 지역사회 첫 전파 사례가 된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계절독감처럼 유행해 지역사회로 급속하게 퍼질 수 있다"며 "중국 등 특정 위험국가를 중심으로 한 검역 위주에서 지역사회 감염에 대비하는 대책으로 대응양상을 바꿔야한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지금까지의 방역대책은 코로나19의 국내유입을 차단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지역사회 및 의료기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염사례를 차단하고 지역사회 확산을 방지하는 것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고, 이와 관련된 관계 부처와 지자체의 협력방안에 대하여 논의했다"고 밝힌 배경이다.

16일 국내 29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다녀간 고대안암병원 응급실 입구에 폐쇄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학교 개학 대비 방역 강화 계획 밝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지난 16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각 부처와 함께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개학 대비 방역 강화 계획, 중국 입국 유학생 관리 방안, 사업장 방역조치 및 고용지원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진단 검사 확대를 통한 환자 조기발견 △ 지역사회, 의료기관 감시체계 구축 △의료기관의 감염 예방과 요양시설 등 보호조치 강화 등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를 요청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이날부터 시도별 병상, 인력 운영 계획에 대한 일대일 점검을 실시한다. 요양병원 등 감염 예방 조치 상황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합동점검을 나갈 예정이다. 국내 약 7만명 이상인 중국 유학생에 대해선 지자체에서 보유한 숙박시설을 거주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요청하고 건강상태 모니터링을 강화한다. 요양병원 종사자 및 간병인에 대해선 중국을 비롯해 홍콩, 마카오 방문 이력 전수 조사, 면회객 제한 등이 권고됐다.

중국 등에서 입국한 종사자에 대해서는 14일간 출근을 금지하고, 해외여행력이 없더라도 의심증상이 있으면 업무를 배제하고 진단검사를 하는 방안 등이 있다.

◆"코로나 19, 독감 같은 유행병 양상…지역사회 감염 방지, 첫 관문은 동네 병의원"

감염병 전문가들도 지역사회 감염 방지를 최우선 목표로 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제 여행력만으로 환자를 분류하면 안되고 폐렴이 있는 환자들도 같이 선별해 검사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인(sign)이 온 상황"이라며 "우리가 모르는 환자가 어딘가 섞여 독감 환자처럼 병원에 올 수 있다. 가장 처음으로 환자를 맞이하는 지역 의원이나 중소 병원에서 코로나19 대응 태세를 재정비할 때"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의 정점을 묻는 질문에 "중국 상태가 호전되는 것을 봐야하지만, 판단하기엔 이르다"며 "이미 우리나라에도 유입환자가 많이 들어와서 지역사회 전파 속도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국내에서 역학적 고리 없이 환자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면 본격적인 확산기라고 얘기한다"며 "우리나라도 초기 신호가 나타났다고 봐야한다. 지역사회 감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지역사회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선 동네 병·의원 등의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형 병원이나 대학병원, 종합병원급은 이런 환자의 내원에 준비가 잘 돼 있다"며 "하지만 동네 의원급이나 중소병원에 다니는 분이 더 많은데 그런 병원들이 지금부터라도 빨리 (지역사회 감염에) 준비하고 대응 방법을 수정하는 작업을 이번 주 안으로 해야한다"라고 했다.

코로나19는 초기 증상은 독감과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흡사하고 증상이 경미해도 강한 전염력을 보인다. 이 때문에 일종의 계절 독감 같은 유행병처럼 보고 대비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방지환 중앙감염병병원 운영센터장(신종 코로나 중앙임상TF 팀장)은 "코로나19의 중증도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 떨어지지만, 이는 환자들이 더 활발하게 지역사회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뜻이어서 전파력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일본에서도 역학 고리가 연결되지 않는 사례가 나타나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현실화됐다"라고 말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도 지난 16일 "코로나19의 특성상 환자가 증상을 인지하기 어려운 초기부터 전염력이 있는 만큼 지역사회 감염의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보고 있다"며 "특히 환자나 어르신이 많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감염이 확산될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감염학회는 대정부 권고안을 통해 "다음 단계에 벌어질 수 있는 지역사회 유행은 더 큰 규모로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심환자 분류·전달체계 재정립 필요…병원 내부 감염 막아야"

지역사회 확산을 막으려면 지역 의료 현장의 혼란 최소화를 위해 우선 의심환자 분류·전달체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키운 ‘병원내 감염’의 재연을 막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대한병원협회 신종코로나 비상대응본부 이왕준 실무단장(명지병원 이사장)은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중심으로 기존 550여개 선별진료소를 재분류해서 검사를 위한 검체 채취가 가능한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 간의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며 "보건소를 개편해 의원이나 중소병원에서 의뢰하는 검체 채취를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사회 확산의 한 축으로 꼽히는 ‘병원내 감염’을 막기 위해 경증과 중증으로 나눠서 환자를 진료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증 환자를 빨리 발견해서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도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중요하다"며 "특히 중증 폐렴 환자를 선별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서 치명률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감염학회와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대한항균요법학회는 앞서 코로나19 의심환자 선별은 보건소로 일원화하고, 경증 환자는 공공의료원에서 진료하는 방안을 권고한 바 있다. 국가지정격리병상을 운영하는 대학병원 등은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코로나19 대정부 2차 권고안’을 통해 "위기상황이 장기화되면 급성기병원의 선별진료기능 증가로 일반 급성기 환자, 중증 환자의 진료에 제한이 생긴다"면서 "경증 의심환자가 확진 검사를 위해 국가지정격리병상에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확진자의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증 의심환자 선별진료는 보건소로 일원화하고, 인력이 부족한 보건소는 다른 진료 업무를 배제하고 선별진료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본부가 방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