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찾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공상과학(SF) 전문 서점 'SF 보크한델른(책방)'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1층엔 포켓몬·해리포터·스타워즈 등 글로벌한 캐릭터 관련 도서들이 진열됐고 2층엔 이와 관련한 다양한 상품들이 놓였다. 마니아적 성격이 강한 독립 서점이었지만, 스웨덴 시민들은 한 권에 3만5000원쯤 되는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스웨덴은 명실공히 세계 제1의 독서 국가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자료를 보면 스웨덴의 연평균 독서율은 90%(한국 73%)로 세계 1위다. 15세 이상 국민 10명 중 9명이 1년에 책 1권씩은 읽는다는 이야기다. 반면 한국에서는 '책을 읽는 사람'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12.8권(2011년)→11.2권(2013년)→9.3권(2015년)→9.5권(2017년) →7.3권(2019년). 우리나라 13세 이상 국민이 1년간 읽은 책의 숫자로 점점 감소하고 있다. 올해면 1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갈지도 모른다. 등단 시인인 나에겐 아픈 현실이다. 책 많이 읽는 스웨덴은 한국과 무엇이 다를까.
스웨덴은 책 이전에 도서관 강국으로 꼽힌다. 도서관이 많고 국민은 도서관을 사랑한다. 스웨덴의 공공 도서관 이용률(15세 이상 국민 중 연 1회 이상 공공 도서관에 간 사람의 비율)은 74%로 세계 1위다. EU 평균(31%)이나 한국(32%)보다 훨씬 높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꼽히는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에 들어갔다. 반원형으로 구성된 3층 서가에 빼곡히 채워진 책들은 한편의 거대한 예술 작품 같았다. 한국 도서관이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책을 진열하기 위해 '도미노식 책장' 방식을 채택한다면, 스웨덴 도서관은 벽을 따라 일렬로 책을 배치해 책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책 수가 적을망정 독자 눈에 책이 최대한 쉽게 들어오도록, 그래서 편히 손이 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스웨덴 인구는 한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공공도서관은 약 1300개(분관 포함)로, 한국(1100여개)보다 많다. 도서관 개수만큼 위치가 인상 깊었다. 한국의 광화문광장에 해당하는 스톡홀름 세르겔 광장엔 예술과 음악 등에 특화된 쿨투어후셋(문화의 집) 도서관이 시민극장과 함께 있다. 건물 하나에 일반 도서관과 청소년·만화·영화·음악·요리 도서관 등 6개 도서관을 합친 형태다. '라바(용암) 도서관'이라 불리는 청소년용 도서관엔 한국처럼 공부를 위한 '열람실'이 없다. 감성을 용암처럼 분출하라는 이름처럼, 3D 프린터와 녹음 시설 등 재미에 빠져들 도구가 가득했다. 요리 도서관엔 주방 시설까지 있다. 책 보고 바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란 뜻이란다. 책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대형 쇼핑몰에도 도서관이 입점해 있다. 2015년 국제도서관연맹으로부터 '올해의 공공도서관상'을 받은 시스타도서관은 대형 복합쇼핑몰인 '시스타 갤러리아' 2층 한복판에 있다.한적하고 땅값 싼 곳이 아닌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도서관을 배치한 것이다. 스톡홀름대에서 유학 중인 한 학생은 말했다. "대학 도서관을 포함한 그 어떤 도서관도 아무 절차 없이 들어가 책을 열람할 수 있어요. 모든 도서관이 시민에게 열려 있는 쉼터로서 기능하는 겁니다."
이렇게 책과 친해진 스웨덴 사람들은 서점에 가서 지갑을 연다. 스톡홀름 시내를 걷다 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게 독립 서점과 헌책방이다. 한국과는 다른 풍경이다. 시집·소설집 위주로 배치한 서점부터 영어 책 전문 서점, SF 전문 서점 등 다양한 변주가 존재한다. 이런 서점들에선 베스트셀러와 함께 '주인장 추천 책'을 따로 전시해 놓는다. 위스키 바에서 바텐더와 취향을 공유하듯, 책방 주인과 책 취향을 나누는 즐거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영어 서적 전문 서점 '잉글리시 북숍' 주인인 톰 헨리는 나를 시인이라고 소개하자 "다음 100년에도 세상에 문학으로 채워야 할 공간이 많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며 웃었다. 디지털 기기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는 시대라지만, 스웨덴만큼은 문학과 책이 삶의 중요한 한 조각을 차지하는 곳으로 꽤 오래 남아 있으리란 희망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