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작품·감독·국제영화·각본상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다. 작품상에 특히 눈이 간다. 1년간 상영된 전 세계 수천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Best Picture)이란 의미다.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은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린 북(Greenbook)이다. 따뜻한 미소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영화다. 1962년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Don Shirley)의 미국 남부 투어 실화에 기초했다. 흑인 차별의 실상이 피아노 선율과 더불어 '잔잔하게' 그려진다.

기생충 덕분에 그린 북을 다시 봤다. 영화 속 콘서트 투어 경로를 보면서 필자의 남부 여행 기억이 되살아났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남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99% 미국산 자동차의 아칸소, 걸어 다니면 모두가 쳐다보던 켄터키, 저개발국 수준의 험한 도로로 채워진 조지아…. 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서부 도시와 전혀 다른 공기가 남부에 표류한다.

70여년 전 역사 재생은 앨라배마 시골길을 달리다 얻게 된 수확물 중 하나다. '앤티크'란 글씨로 도배한 작은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다. 폐기물 전시장 수준이지만, 흙 속의 진주 하나를 발견했다. 10달러짜리 유럽풍 수제 찻잔으로 색상과 디자인, 강도가 탁월했다. 찻잔 뒤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메이드 인 아큐파이드 재팬(Made in Occupied Japan)', 즉 점령기 일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큐파이드 재팬'은 1947년 2월부터 1949년 2월까지, 즉 맥아더 장군 통치하의 일본 수출품에 붙여진 국명이다.

이 찻잔은 세라믹의 멋과 맛을 일깨운 기점이었다. 남부에 흩어진 골동품 가게를 통해 꾸준히 수집한 결과 지금까지 200여점을 모았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보면 볼수록 깊고도 신성한 '기(氣)'가 느껴진다. 기아에 허덕이며 점령군의 푼돈에 매달리던 1억 패전국의 '핏빛 눈물'이 배어 있기 때문일까. 진짜 예술은 혼(魂)에서, 혼은 극(極)과 극(劇)의 삶에서 온다고 믿는다. '아큐파이드 재팬' 싸구려 찻잔조차 귀한 예술작품으로 와닿는 이유일 듯하다. "예술에만 미쳤다."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기자회견에서의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