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교육계를 덮쳤다. 교육당국이 마련한 학교 감염병 예방·위기대응 매뉴얼은 힘을 쓰지 못했다. 현실과 맞지 않아 적용이 힘들고, 도리어 학생·학부모의 불안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선에선 수업 결손과 학사 일정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개학 연기나 휴업·휴교를 마음대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교육 당국의 선제 대응이 필요했어요."

서울 한 사립초 A교사는 이같이 말했다. 이 학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지난달 30일께 개학을 강행했다. 확산 우려가 컸지만, 지역사회까지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았고 교내 중국인 학생이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 교육 당국도 개학 연기를 권하지 않아 부담이 컸다. 개학 연기를 검토한 일선 교육청과 개학 연기는 어렵다는 교육부가 엇박자를 내면서 학생·학부모의 불안감은 증폭됐다. 그러나 전체 확진자 수가 15명을 넘어서고, 학부모들이 자체적으로 학생 등교를 거부하는 등 일선의 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3일 돌연 개학 연기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개학 연기 학교 명단 공개를 거부하는 등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결정을 내리며 코로나19 확산 초기 불안감을 억제할 '골든타임'을 스스로 걷어찼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교육 당국이 감염병 유행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5년 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교육계를 할퀸 뒤 감염병 종합대책 마련, 학교 감염병 예방·위기대응 매뉴얼(감염병 매뉴얼) 제작 등 대책을 수립했지만, 정작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 초기 대응에서 번번이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학원의 휴업·휴교 기준이 불명확하고, 학생 관리 대책 등이 누락돼 실제 적용이 힘든 감염병 매뉴얼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칙적으로' 휴업·휴교 막는 감염병 매뉴얼

코로나19 확산 초기, 교사들은 내심 개학 연기를 바랐다. A교사는 "확산 우려가 컸기 때문에 학생 안전을 고려한다면 개학을 연기하거나 휴업·휴교하는 게 타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 B교사는 "개학을 연기하지 않자 일부 학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연락했다"며 "저도 불안감이 커서 차라리 그편이 안전할 것이라고 학부모에게 대답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감염병 매뉴얼은 학교의 자체적인 휴업· 휴교를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 감염병 매뉴얼을 보면 감염병 환자 발생 시에도 '원칙적으로' 휴업과 휴교를 하지 말라고 권한다. 휴업·휴교 시 '사회적 파급이 크고, 학교 밖에서 학생들이 통제되지 않아 오히려 유행이 확산할 수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권고하지 않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 때문에 교육 당국의 권고 없이 휴업·휴교를 결정하려면 학교 당국이 적잖은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휴업·휴교 기간만큼 방학을 줄여 수업일수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학사 일정을 개편해야 한다. 법적으로 천재지변 등의 경우 보충학습 없이 수업일수 자체를 줄일 수 있도록 했지만, 자체 휴업한 학교는 이 조항의 보호를 받기도 어렵다. 자칫 부적절한 휴업 등으로 감사 지적 사항이 될 수도 있다. A교사는 "감염병 등 사태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수업일수 감축 규정을 완화하고 학교의 재량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휴업·휴교 시 '별도 프로그램' 운영 유명무실

이뿐만이 아니다. 휴업 후 대책은 아예 구멍이 난 상황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은 감염병 예방조치를 해야 하지만, 제대로 된 관리는 어렵다. 매뉴얼에 실린 관리대책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휴업·휴교한 초중고와 유치원의 조치사항은 ▲개인위생 강화, 학생 가정학습, 생활지도 방안 마련 ▲가정통신문, 학교 홈페이지, 휴대폰 메시지 등을 이용해 감염병 예방수칙 준수 안내 ▲수업 결손에 대한 보충계획 수립 ▲맞벌이 등 등교 불가피 학생에 대한 학교 내 별도 프로그램 운영 ▲결식 우려 학생에 대한 지원 등에 불과하다.

휴업·휴교 중 관리대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등교 불가피 학생에 대한 별도 프로그램 운영'도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다. 맞벌이 부부 등을 위한 조항이지만, 구체적인 예시가 없어 적용이 어렵다. 일부 초등학교는 돌봄교실을 운영하면서 맞벌이 부부 자녀 등교를 허용하고 있지만 감염 우려 때문에 실제 등교한 사례는 드물다.

이 때문에 현재 학부모는 아이를 지역사회의 소규모 공부방에 보내는 실정이다. 초 2 자녀를 둔 조희진(41·서울 노원구)씨는 "학교가 개학을 연기한 뒤 일을 쉴 형편이 못 돼 현재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공부방에 보내고 있다"며 "마스크 착용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교육 관계자들은 교육부가 더 현실적인 감염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섭 한국사립학교행정실장협의회장은 "현행 매뉴얼은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에만 대응할 수 있는 수동적인 매뉴얼"이라며 "메르스와 코로나19 등 사회를 위협하는 감염병이 주로 국외 등 학교 밖에서 유입된 점을 감안해 학교 담장 밖 감염병 위협에도 학교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실 매뉴얼 탓에 대학도 교육부만 쳐다봐

한바탕 휴업·휴교 논란을 겪은 교육계의 눈은 이제 대학으로 쏠리고 있다. 대학에 속한 대규모 중국인 유학생이 코로나19 확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학기 개강인 3월 2일에 맞춰 오는 20일을 전후해 중국인 유학생의 대규모 유입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초기 대응에 실패할 경우 겨우 둔화한 코로나19 확산이 다시 늘어날 우려도 크다.

이에 대처할 대학의 감염병 매뉴얼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대학생이 성인이고, 대학도 운영 자율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사일정 관리와 대학평가 시 불이익, 재정결손, 코로나19 유(有)증상자 격리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대학은 결국 초중고와 마찬가지로 교육당국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휴업·휴교에 미온적이던 대학은 교육부가 지난 5일 개강 연기 권고를 한 뒤 기다렸다는 듯이 개강 연기를 선언하고 있다. 14일 현재 4년제 대학 가운데 172곳이 개강을 연기했다.

충청권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이 봉착한 각종 문제에 매뉴얼이 어떤 답도 줄 수 없다 보니 대응이 늦은 감이 있다”며 “대학이 위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보장하는 법적 근거 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