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도, 확진자 접촉도 없었다는 29번째 확진자
확진 전 동네병원·노인회관 다녀 '슈퍼전파자' 우려도
방역 당국 "동선과 접촉자 범위 파악중…추후 밝힐 것"
전문가들 "이미 지역사회 방역망 뚫렸다고 봐야…
신속하게 감염 경로 파악해 바이러스 확산 막아야"

29번째 우한 폐렴 환자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고려대 안암병원은 확진 판정 이후 응급실을 폐쇄했다.

16일 우한 폐렴(코로나19) 29번째 환자로 확진된 A(남·82)씨는 어디서 어떻게 감염됐는지를 알 수 없는 국내 첫 사례다. 감염 여부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동네 병원과 노인회관 등을 다닌 것으로 파악돼 불특정 다수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수 있는 ‘슈퍼 전파자’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A씨는 서울 종로구 주민으로, 기존 확진자의 접촉자가 아니며 (해외)여행 이력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확진된 28명의 환자는 모두 우한 폐렴에 감염된 확진자와 접촉했거나 중국 등지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었는데 A씨는 현재까지 감염 경로 자체가 전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방역 당국은 현재 A씨의 가족과 함께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시기에 만난 것으로 추정되는 가족과 친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우한 폐렴에 감염됐는지는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일단 (A씨에) 노출된 사람에 대한 접촉자를 파악해 조치를 취하는 게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는 29번 환자의 감염 경로를 조사해 기존에 알려진 확진자나 접촉자와 만났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에게는 우한 폐렴 증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29번째 우한 폐렴 환자가 다녀가 폐쇄된 고대안암병원 응급실 음압격리실에서 16일 보건 당국 관계자들이 방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

A씨는 국내 확진자 가운데 가장 고령자로, 심장 질환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에도 가슴 통증을 느껴 동네병원에서 관상동맥 이상 소견을 받았고, 오전 11시 45분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을 찾아 엑스레이 검사 등을 받았다. 이 때 폐렴 의심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후 의료진은 A씨의 흉부 CT(컴퓨터 단층 촬영)을 통해 바이러스성 폐렴을 확인하고, 음압병동으로 옮겨 우한 폐렴 검사를 실시한 결과 ‘우한폐렴’ 양성 판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확진 직후인 이날 새벽 2시쯤 A씨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격리됐다. A씨 이송 후 고대 안암병원 측은 응급실을 폐쇄하고, 응급실 의료진 36명과 환자 6명을 격리 조치했다.

질본은 A씨가 최근 다녔던 동선과 접촉자를 파악 중이다. A씨는 확진 전 동네병원 2곳을 다녀간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방역 당국은 아직 조사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아 구체적인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질본 관계자는 "안암병원에 가기 전에 동네 개인의원 2곳을 다녀간 것으로 조사됐지만, 아직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병원 이름을 밝히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A씨는 또 평소 노인회관을 다녔었는데, 이 노인회관은 현재 폐쇄돼 있다고 한다. 정 본부장은 "A씨가 다녔던 노인회관이 폐쇄됐으나, A씨 때문에 폐쇄된 것은 아니다"며 "코로나19 우려가 커지면서 사회복지 시설들이 일부 폐쇄된 곳들이 있다. 정확한 내용을 역학 조사가 진행되면 동선과 접촉자의 범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A씨의 감염 경로에 대해 최석재 이천 엘리야병원 응급센터장은 "아직까지 조사가 덜 진행돼서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본인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확진자, 혹은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과의 접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역 당국은 신속하게 A씨가 접촉했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감염 경로를 확인하고, 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 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환자가 나왔다는 것은 국내 방역망이 뚫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A씨는 특이하게도 노인인데다, 심장질환이 있어 대학병원을 찾았고, 운이 좋아 우한 폐렴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지역사회 전파를 막으려면 A씨와 만난 사람들 빨리 찾아서 조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