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집도 물물교환… 초가치 실험 하는 유아인
"태어난 건 던져진 것… 어차피 나는 뻘짓의 달인"
"받은 사랑에서 도망않고, 더 나은 나로 보답하고파"
"열을 올리는 게 사랑… 투쟁 멈추면 뭘 하는지 잊어"

엄홍식 혹은 유아인.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대표이자 대한민국의 배우. 스스로를 ‘관종 15년’이라 부르는 여유, 솔직하게 느낀대로 말하면서도 논리에 어긋나지 않은 화법을 지녔다.

"운명이죠. 내가 선택한 게 아니고 던져진 생명체로서의 운명… 던져졌기 때문에, 저 자신도 계속 다음 그라운드로 저를 던져요."

겨울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유아인은 눈이 부신 듯 미간을 찌푸렸다. 역광 속에서도 야전 점퍼에 진을 걸친 실루엣이 눈부셨다. 그을린 얼굴빛, 희고 가지런한 치아, 두툼한 입술까지 더해 그의 외양은 국적을 짐작할 수 없이 인터내셔널했다. 지구본처럼 동그란 두상 위로 노랗게 물오른 짧은 머리털은 싱그러웠다. 1월까지 발리에서 있었다고 했다. 예술마을 우붓에 머물며, 섬과 바다를 오갔다.

유아인은 현재 두 편의 영화 촬영을 끝냈고, 시와 일기 사이 독특한 ‘형태감'을 가진 책을 쓰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그가 설립한 창작집단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초가치 예술실험이라 불리는 프로젝트 ‘1111’을 론칭했다.

미술품 경매 최고가 갱신이 뉴스가 되는 시대에, 유아인은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 예술품 물물교환을 제안했다. 최초 거래 물권에는 회화와 소장품은 물론 유아인의 집도 포함됐다. 입찰자는 돈 대신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내놓고, 가치 교환의 형태로 성사된 결과물은 올해 말에 공개된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삽질 중에 빅 삽질'이다. 창단 5년째를 맡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리더로,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악플에 겁먹고 수시로 ‘자아를 삭제하는’ 보통의 연예인과는 달리, 이미지가 중요한 유명인사로 살면서도, 서슴없이 ‘키보드 워리어’로 충만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유아인.

유아인에게 대화를 청했다. 한남동의 3층짜리 복합 공간인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월요일은 휴무로 텅 빈 채였다. 희고 긴 테이블을 앞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내 등 뒤로 동영상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의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기록을 위해서였다.

“예술가든 창작자든,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공과 사를 아우르는 특이한 존재가 되어가죠. 때로는 서로를 괴물로 때로는 친구로 느끼면서요.”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묻고 싶은 걸 물어주시지요. 제가 왜 궁금한 지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하하. 관종 인생 15년을 살았어요."

-스스로 관종이라고 생각하나요?

"(웃으며)자의 반 타의 반이죠. 자의조차 타의의 반영인지도 모릅니다."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으로 말과 글의 논리성은 어떻게 만들어내죠?

"솔직하게 던져요. 논리적 구성은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표현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아요. 없는 논리를 쌓기보다 느낌의 타당성을 찾아가는 방식이죠. 비록 유난스럽고 부정적인 해석에 놓이더라도, 판단 받는 게 두려워 솔직한 표현을 멈추진 않습니다."

‘느낌의 타당성’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신선하게 다가왔다.

-당신이 말하는 톤 앤 매너와 연기의 톤 앤 매너는 비슷한 면이 있어요. 약간 흥분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그런 화법을 의식하고 있나요?

"연기할 때는 통제하기 위해서 의식해요. 삶에서는 이것마저 통제해야 할까,를 의식하죠."

-흥분 상태에 있는 건 왜 그런가요?

"흥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봐요. 흥분되지 않는 일은 잘 움직이지 않아요. 흥분되지 않는 일조차 제가 흥분함으로써 흥분되는 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자주 흥분하는 편인가요?

"흥분이 삶의 느낌입니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죠."

-죄에 민감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더군요.

"죄와 부끄러움 사이에서 내적 갈등이 생겨요. 나다운 삶, 나로서의 삶, 양심적인 선택… 이것으로 구성된 삶이, 늘 충분함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껴요. 자기방어의 차원일 수 있지만, 그래서 늘 질문하는 거죠. ‘나는 진실한가, 양심적인가'."

-당신이 늘 양심을 생각한다는 게 흥미롭군요. 도덕성이 강한 사람은 자존감이 높지요.

"양심이란 게 뭘까요… 제 안에는 삶을 기웃거리면서 만들어진 제 마음의 돌기가 있어요. 34년의 시간 동안 그 돌기에 슥슥 걸려서 남은 것들이 있죠.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 적어도 내 마음에 걸림이 없는 상태여야 해요. 나답게 그리고 양심에 맞게 표현했느냐를, 저는 항상 점검해요."

유아인은 앞뒤 모순이 없는 독특한 만연체 어휘를 구사했다. 화자 스스로 대단한 집중력과 통제력을 발휘해야만 쓸 수 있는 구조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죠. 공적인 결정을 할 때 기준은 뭐죠?

"어떤 상황이든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날 수 있는 일을 해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충분해졌다 싶을 때 움직이죠."

-예술을 물물교환으로 거래한다는 ‘페어아트1111’은 대단히 전위적인 ‘소셜 퍼포먼스'예요. 어떻게 이런 ‘초 가치실험’을 펼칠 생각을 했나요?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시작한 지 5년이 됐어요. 어쩌다 보니 제가 그림 장수, 화상이 돼 있더군요. 애초에 그림 장수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주변에 가난한 창작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을 향한 저의 사랑이 존재했어요.

어느 날 제가 친구들에게 묻고 있었어요. "그래. 월세 40만 원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지. 그런데 그걸로 충분해? 경제 활동이 있어야 더 많이 창작할 수 있지 않아?" 사랑이 있으니, 오지랖이 발동하더군요."

-다정한 오지랖이로군요!

"세상과 아름다움을 나누며 그들의 작품을 양심적으로 팔 수 있다고 생각했죠."

-유능한 화상이었습니까?

"권철화 작가, 김재훈 작가... 다 잘 팔았어요(웃음). 권철화 작가의 지난 전시회도 ‘완판’이었어요. 제가 가치 교환을 한다니까 그림 안 팔려서 그런 줄 아는 데 아니에요. ‘러브 포 우한' 캠페인도 중국에 장사하려고 한다고 그러시는데, 아니에요(웃음)."

오해를 받아서 슬프지는 않다고 했다. 오해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아서, 그게 슬플 뿐이라고.

드로잉 하나에 10만 원 안팎, 제작자로서 작가와 함께 양심을 지키며 가격을 결정하는 그 과정이 행복했다. 소비자의 반응을 끌어냈고, 작가는 성장했으며, 제작자는 물이 올랐다. 그토록 바라던 일종의 자본 순환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다음 전시를 위해 그림값을 결정할 타이밍에 유아인은 모든 것에 제동을 걸었다. 이번엔 돈 받고 그림을 팔지 말자고.

-왜죠?

"저도 알아요. 그게 꼴 보기 싫은 우아함으로 비치리라는 걸.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스템은 내 책임과 선택에서 비롯된 독특한 유기체예요. 애틋한 자식새끼죠. 어떤 영혼을 불어넣느냐에 따라 더 나은 생명체로 자랄 수 있어요.

그래서 수익의 최대치가 보람인 이 시스템을 멈췄어요. 독점적인 가치를 나누면서 다시 세상에 침투하자, 그렇게 다층적인 접근으로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다음을 모색하자는 거죠."

-동료 예술가와 크루들이 동의했습니까?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처음 시작할 때, 친구들을 모아놓고 얘기한 게 있어요. "나는 쓰는 것보다 버는 돈이 좀 더 많아. 그걸로 사치도 하고 결핍도 채워. 그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경험과 기회를 주는 거야. 너희도 그 기쁨을 느껴봐. 그 과정에서 세상에 없던 어떤 가치가 생기겠지. 그 가치가 사람들에게 흘러간다면, 우린 세상의 아름다움에 일조하는 거야.""

-어떤 식으로 진행됐죠?

"‘1111 프로젝트’에 참의할 의지가 있다면 스튜디오 콘크리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업로드된 그림을 클릭하고 교환희망서를 작성하면 돼요. 어떤 식으로 물물교환 될 지는 아직 저도 몰라요. 서로 합의 하에 거래가 이루집니다."

-본인의 집도 물물 교환 대상으로 내놨다고요? 공공미술관이나 마을 회관 형태로 전환될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놀랍습니다.

"사람들이 놀라긴 하나요?"

-그럼요. 집주인이 제정신이 아니거나(웃음), 그게 아니라면 매우 진지하고 진정성있는 실험으로 기록되겠지요.

"집은 2월 중에 내놓을 계획이에요. 권철화 작가의 그림 조각 140여 개를 플랫폼으로 만들어놓고 보니, 이 가치 실험이 그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진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게 뭘까? 예술작품과 대칭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물건이 뭘까? 환상보다는 현실에 닿은 무엇… 그게 집이었어요."

우리 모두, 나 자신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요구받지 않느냐고 그가 또박똑박 되물었다. 이런 부동산 가치시대에, 집이 교환의 풍경에 더해진다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냐고.

"저는 어떻게 자라날지 모르는 괴물같은 유기체에, 저의 영혼을 불어넣은 거예요. 하하하."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2014년 유아인이 화가, 사진가, 디자이너 등을 주축으로 만든 창작집단. 한남동 건물은 갤러리, 카페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인다.

물욕을 내려놓은 듯한 유아인의 웃음 소리는 더 없이 가볍고 청량했다. 순수한 예술가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가끔 그들의 행위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타인의 갑론을박이나 내면의 중력에 의지하지 않고 몸과 영혼을 던질 때, 그 행위는 하나의 차원을 넘어간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하하. 제가 뻘짓과 삽질의 아이콘이잖아요. 이번이 제가 한 ‘빅 삽질’ 중 하나가 되겠죠. 삽질하는 사람은 삽질하며 살아야 해요. 예술 그 자체가 굉장한 삽질이잖아요. 앞으로 부동산이, 유아인이, 권철화가, 콘크리트가 어떤 것으로 변화되고, 어떤 제안으로 갈무리되는가가 중요해요. 이것으로 어떤 느낌이 생성되는가가 중요합니다."

5년 만에 장만한 생애 첫 집이지만, 그 퍼포먼스 재료로 충분하다고. 이번 프로젝트로 자신이 얼마만큼의 삽을 뜰 수 있는 인물인지 알게 될 거라고 했다.

-리더 역할을 즐기는 편인가요?

"그렇게 즐기지도 않지만, 역할이 오면 그 순간을 피하지도 않아요. 콘크리트의 시작도 그랬죠. 리더가 되면 분명히 발현되는 에너지가 있어요. 하지만 리더가 된 후로 제가 집중하는 건, 점점 리더가 되지 않는 일이에요. 책임이나 베네핏, 원치 않는 독점… 다 버거워요. 짐이죠.

(앞의 컵을 움켜쥐며)가령 모두가 합심해서 이 컵을 만들었다고 쳐요. 컵을 내놓아도 이 손아귀의 힘은 남아 있어요. 그 힘이 계속 작동되도록 컨트롤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에요. 어쨌든 손안에 재료를 넣으면 제품은 계속 만들어지죠. 그때 저는 리더로서 그 힘을 어떻게 분비하고 분배할까를 고민해요."

-그 힘의 종류는 무엇이죠?

"사회를 작동시키는, 생산의 근력인데요. 저는 의미를 더해 내가 살아가는 동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문득 당신이 출연한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떠오르네요. 아인 씨는 국가가 망하는 데 운명을 거는 금융 천재 역할을 맡았어요. IMF로 전 국민이 울부짖을 때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아파트를 ‘줍줍'했죠. 영화적인 체험이지만, 돈과 욕망에 대해 아이러니를 느꼈을 것 같습니다.

"못난 구석이 있는 인물이죠(웃음). 주인공도 아니고 세속적인 데다 영웅적이지도 않아요. 정의와는 거리가 멀고. 그런데도 마음을 찌르는 면이 있었어요. 표현의 욕구가 생겼죠."

-씁쓸한 ‘욕망의 기회주의자’를 유아인의 얼굴로 보는 경험이 흥미로웠어요. 당신은 어땠나요?

"제가...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부분에서 저의 선택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나를 생각해봐요. 배우로서건 활동가로서건, 왜 내가 저기 가서 생뚱한 그림을 그렸을까? 퍼즐의 감각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연기는 또 다른 형태감을 제공해요. 개인 작업의 연장선을 떠나 중구난방 널을 뛰기도 하죠. 마음의 끌림을 따르는 일이라(웃음)…"

유아인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는 2015년에 연이어 개봉한 의 두 편의 영화 ‘사도’와 ‘베테랑’이었다. 재벌 3세라는 현대판 왕자와 조선 왕자의 비참한 말로가 오버랩되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대기업 왕회장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임원회의에 기저귀를 차고 들어가는 유아인과 조선의 왕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다 뒤주에 갇혀 오줌을 지리는 유아인.

아주 차가운 유아인과 아주 뜨거운 유아인.

타인에 의해 꺾일지언정 스스로 부러지겠다는 괴력의 자아. ‘베테랑’과 ‘사도’에서 유아인이 보여준 것은 제어되지 않는 ‘힘’이었다. 그것은 ‘왕자’라는 출신 성분의 힘이 아닌 유아인이라는 생명체가 지닌 원초적인 힘에 가까웠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유아인은 악역의 기운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베테랑'과 ‘사도' 이후 ‘대한민국에서 ‘또라이’ 연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더군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베테랑'의 조태오도 ‘사도'의 사도도 잘못된 환경에서 만들어진 소시오패스예요. 도덕 관념이 없죠. 제가 보기에 그들은 그저 귀여운 반항아예요. 자기 행동을 주도하는 극적인 에너지가 없달까요. 그 모습에 ‘미친 연기’를 거론하시면… 저는 뭐 그렇게 놀라실 것까지야. 하하. 아직 보여드릴 것이 많습니다."

-하루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버닝'을 작업할 때는 어땠나요?

"오히려 미친놈은 ‘버닝'의 종수였어요. 형태적인 지랄 방광은 없었지만, 가장 조용하게 미친 인물이었죠."

-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을 연기한다고 생각했나요? 이창동 감독은 당신에게 무엇을 주문했습니까?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요?

"‘버닝'은 그게 숙명이었어요. 알아야 하는 것과 모르는 것, 그 사이에 선을 긋는 행위의 무색함이랄까요. 그런 스타일의 대사와 심상을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내가 느끼는 세상을 잘 그려냈죠. 잘 모르는 세상을 가장 잘 모르게. 나는 누구였을까? 그게 진짜 나였을까… 그 자체의 미스터리가 생성된 거죠. 쉬운 정답만 있는 세상에서, 어려운 그대로를 드러낸 것도 용기죠."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유아인은 오늘 나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즉자적으로 표출해내는 배우”라고 이준익 감독은 말했다.

-동시대의 청년들처럼 당신도 슬럼프를 겪습니까?

"저는 삶이 총체적으로 슬럼프예요. 힘 있는 표현들이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슬럼프를 지나가는 중이죠. 이게 맞나? 수많은 판단보류와 거기서 삐져나오는 미완의 결정들이 엉켜있죠. 그런데 슬럼프가 뭐죠?"

-밑바닥에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생각해보니 제가 느끼는 슬럼프는 선명한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 상태네요."

-모든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는 없어요. 그럴 땐 보통 상식을 빌리고 어른에게 지혜를 구하죠. 존경하는 어른이 있습니까?

"생존한 어른은 다 존경해요. 진짜예요. 과거엔 싸잡아서 어른을 비방했지만, 지금은 살아남아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해요. 진심으로 묻고 싶어요. "어떻게 버텨서 떳떳하게 살아있을 수 있죠?"

어른들에겐 미움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커요. 예전엔 택시 기사분이 말 시키면 "왜 내 시간을 뺐지?" 싶었는데, 지금은 그 존재만으로 고마워요."

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

-성장기와 부모는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킵니까?

"17살 때 대구에서 상경했어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죠. 고향은 고향이고 엄마는 엄마예요. 세월이 지나 보니 엄마는 삶에 깃든 우아함을, 아빠는 도전정신을 일깨워줬던 것 같아요. 거기에 어떤 이상향이 또 버무려진 게 저죠. 거부하고 싶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웃음)."

-그런 기질로 인해 청소년기부터 글을 써왔지요? 글쓰기는 ‘생각하는 인간'으로 가는 매우 중요한 여정인데요. 한편으론 세상의 불쾌감을 감지하는 촉수가 발달한 사람이 글을 쓰려는 욕구가 강하지요.

"자극을 감지하는 건 본성이죠. 세상을 불쾌하게 느껴서 외면하고 자기 성으로 들어가는 건 쉬워요. 성에 숨어서 안락하게 사는 것보다, 성 밖에서 불쾌를 표현하는 게 사실적인 삶이라고 느껴요. 사회와 개인, 전체와 나 사이를 조율하면, 새롭게 떠오르는 삶의 그림이 있거든요. 저는 그걸 쓰고 그리는 사람으로 등 떠밀린 거죠."

-운명이라는 거죠?

"일종의 운명이에요.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니고 던져진 생명체로서의 운명…"

-이 세계에 던져졌다고 느끼나요?

"네. 그렇게 느껴요. 던져졌기 때문에, 저 자신도 계속 다음 그라운드로 저를 던지는 거죠."

지구에 날아온 한 촉의 화살처럼 ‘태어난 것만으로 떳떳하고 싶다’는 비상한 자존의 힘이 느껴지는 유아인.

-배우가 되기로 한 건 스스로의 결정이죠?

"네. 절박하기도 했고, 떳떳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연기를 잘하고 싶은,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현장에서 소통은 잘 되고 있습니까? 동료들과 잘 지내나요?

"예전보다는 즐겁습니다. 소통하기로 결정하면 또 잘 통하죠. 소통의 의지가 더 많아졌어요."

-당신의 일을 사랑합니까?

"열을 올리고 있는 그 자체가 사랑이죠. 예쁘기만 한 사랑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전투를 치르듯 그렇게 사랑을 해요(웃음). 투쟁하지 않으면 자기가 뭘 하는지 잊어요. 항상 반성하죠. 나는 떳떳한가? 20살 소녀가 "아인 오빠, 멋져요." 그러면 저는 그게 뻘짓이 아니도록, 나 자신이 떳떳해지고 싶은 거예요. 설사 그것을 만족시키지 못해도 "배우는 환상을 파는 존재"라는 건 인지해요. 그 과정을 다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도."

-통제에 대한 욕심이 큰가요?

"오히려 통제되고 싶지 않아 저항하는 쪽이죠. 고정되고 싶지 않아서 계속 깨부수는 거예요. 저의 이미지를. 내 소명의식대로, 내 양심대로 직업의식을 계속 생성시키는 중이에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얼마만큼 제어했나요?

"사랑과 인정이 목적이던 시기는 지났어요. 이미 주고받았고 그 관계에서 선명한 확인을 받았어요. 그렇게 받은 사랑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해요. 관계를 통해서 그 호흡을 통해서, 우리라는 인식을 가져가는 게 중요하죠."

-받은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겠다는 거지요?

"네. 사랑의 감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좀 더 성숙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달까요. 받은 사랑에서 도망치지 않고 더 나은 나로, 더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보고 싶어요. 희망 사항이죠."

“개인의 삶은 세상을 횡단하하면서 거둬들이는 거예요. 저는 세상에서 많이 가져왔어요. 여러분도 제게서 마음껏 가져가세요.”

-마지막으로 묻고 싶어요. 유아인과 엄홍식은 서로 사이가 좋은가요? 하나의 예술품으로 통합되어 있습니까?

"네.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요. 분리가 중요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구분된 역할을 플레이하고 있어도 내가 느끼는 본체는 매우 강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