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첫 관문인 아이오와·뉴햄프셔 경선이 치러진 뒤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른 민주당 후보는 마이클 블룸버그(77) 전 뉴욕시장이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13일(현지 시각) "블룸버그에게 스포트라이트와 정적(政敵)들의 비난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작년 11월 24일 뒤늦게 대선전에 뛰어든 블룸버그 전 시장은 첫 두 경선엔 아예 참여하지도 않았다. 14개 주(州)에서 동시에 경선이 열리는 3월 3일 '수퍼 화요일'부터 집중하기 위해 2월에 치르는 초기 4개주 경선은 건너뛰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외(場外)에 있는 블룸버그의 지지율은 급상승하고 있다. 미국 내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 분석하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블룸버그의 지지율은 지난해 11월 24일 2%를 기록해 전체 순위 7위로 시작했다. 이는 2월 들어 급등, 지난 12일 14.2%를 기록하면서 3위까지 올랐다. 또 10일 퀴니피액대가 발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블룸버그는 51% 지지율을 기록, 9%포인트 차로 트럼프(42%)를 앞섰는데, 이는 민주당 주자들 중 가장 큰 격차로 트럼프를 이긴 것이다. 11일 경선이 치러진 뉴햄프셔의 딕스빌노치 선거구에서는 투표용지에도 없는 블룸버그의 이름을 유권자들이 수기(手記)로 적어내, 블룸버그가 이 선거구의 승자가 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12일(현지 시각) 테네시주 채터누가의 한 유세 현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는 3월부터 본격 등판하겠다며 2월에 열리는 첫 4개 주 경선에 참여하지도 않은 블룸버그의 지지율이 급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식 등판조차 하지 않은 블룸버그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뭘까. '좌파의 아이콘'인 버니 샌더스(78) 상원의원이 경선판을 리드하면서, 민주당 내 중도 표심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당적도 없는 샌더스가 전국 여론조사 지지율 1위로 올라서면서 민주당 중도층은 비상이 걸렸다. 한때 지지율 40%를 돌파해 중도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던 조 바이든(77) 전 부통령은 첫 두 경선에서 충격적 패배를 기록하며 추락했다. '바이든으로는 안 된다'는 위기론과 함께 중도인 피트 부티지지(38) 전 인디애나 사우스벤드 시장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러나 부티지지는 정치 경륜이 부족한 데다, 결정적으로 동성애자라는 점에서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그러자 블룸버그에게 관심이 자연스레 쏠렸다. 블룸버그는 공화당 당적으로 2번, 무소속으로 1번 3선(2002~2013년) 뉴욕시장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 거부인 그는 시장 시절 연봉을 단 1달러만 받으며 2001년 9·11테러 이후 위기에 빠진 뉴욕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검증된 정치인이다. 그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이민정책에 반대하고 낙태·총기 규제·환경 문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기업가 출신으로서 시장 자율성을 강조하는 보수적 면모도 보인다.

당 안팎 경쟁자들의 견제구도 강력해지고 있다. 바이든 캠프는 10일 블룸버그가 과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녹음 파일을 언론사 등에 이메일로 뿌렸다. 샌더스는 블룸버그가 선거 광고 물량 공세를 하는 것을 문제 삼아 "미국 정치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블룸버그를 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트럼프는 요즘 매일같이 블룸버그에 대해 "미니 마이크(Mini Mike·자신보다 키가 작다는 의미)" "경량급이고 토론도 못한다" 등의 비난을 퍼붓는다. 트럼프는 사업가 시절부터 뉴욕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 블룸버그에게 열등감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트럼프(2018년 기준 31억달러·약 3조7000억원)보다 블룸버그의 재산(2018년 기준 534억달러·약 63조원)이 훨씬 많다. 트럼프는 12일 "민주당 선두 주자 샌더스에겐 에너지가 있다"고 이례적인 칭찬을 한 뒤, "나는 샌더스보다 블룸버그랑 맞붙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쉬운 상대(샌더스)를 의도적으로 치켜세운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12일 테네시 유세에서 "나는 트럼프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트럼프는 나를 두려워한다. (탄핵 심판에서) 상원은 트럼프를 파면하지 못했지만 나는 오는 11월에 표로 그를 쫓아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