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1월 29일자 31면에 실린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자기 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진보 성향 대학교수와 해당 칼럼을 게재한 신문사 담당자를 검찰에 고발한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정당이 개인의 의견을 피력한 신문 칼럼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이에 대해 진보 진영에선 "진보를 표방하는 현 정권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진보 진영 대표 인사들은 '민주당만 빼고 (찍자)' '나도 고발하라'며 잇따라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5일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그의 칼럼을 게재한 경향신문 담당자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 법률위원회 검토를 거쳤다"며 "우리 당을 떨어뜨리려는 선거운동으로 보인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임 교수는 지난달 29일 자 '민주당만 빼고'란 제목의 칼럼에서 "촛불 집회 당시 많은 사람이 '죽 쒀서 개 줄까' 염려했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며 "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정권 유지에 동원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한 줌의 권력과 맞바꿔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했다. 임 교수는 노동·인권 운동에 관심이 많은 진보 성향 학자다. 2013년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기동부연합은 이른바 NL(민족해방) 계열 운동권 분파다.

임 교수는 13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자신을 고발한 사실을 알리면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 압도적 지지를 당부했다. 당선 운동은 되고 낙선 운동은 안 된다는 얘긴가"라며 "1987년 민주화 이후 30여년 지난 지금의 한국 민주주의 수준이 서글프다. 민주당의 완패를 바란다"고 썼다.

임미리, 진중권, 김경율, 우석훈

그러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 진보 인사들은 이날 줄줄이 "나도 고발하라"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라며 "리버럴 정권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여러분, 민주당은 절대 찍지 맙시다"라고 했다.

참여연대 김경율 전 집행위원장은 "임 교수의 한점 한획 모두에 동의한다. 한줌 권력으로 나를 고발한다면 얼마든지 임 교수 주장을 반복할 것"이라고 했다. 민변 소속 권경애 변호사도 "임미리 선생님과 경향신문을 고소했다고? 민주당만 빼고 찍어 달라고 아예 고사를 지내신다"며 'NO 민주당. 보이콧 파시스트. 믿지 않습니다. 뽑지 않습니다'라는 이미지를 첨부했다.

'88만원 세대' 공동 저자인 박권일 사회평론가는 "민주당의 방약무도(傍若無道·도리를 모르고 함부로 날뜀)가 넘치다 못해 기본권마저 파괴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기어코 전체주의 정당 내지 파시스트당으로 가려는 건가"라고 했다. 같은 책 공동 저자이자 진보 성향의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 우석훈 박사도 "이런 건 진짜 아니다"라고 했다.

우 박사는 "내가 정부에 대한 비판을 참 많이 한 사람인데, 이명박이 광우병 촛불집회 때 (내게) 이를 갈면서도 고발하지는 않았다"며 "박근혜도 (내게) 엄청 신경질 냈었다고 하는데도 고발당한 적은 없다"고 했다. '황해문화' 전성원 편집장도 "고발하다니 이건 도가 지나치다. 나도 함께 고발해다오"라며 "그동안 나도 당신들을 비판하지 않았나. 내 비판은 듣기 좋은 자장가로 들렸단 말인가"라고 했다.

정치권 내부 논란도 이어졌다. 대안신당 김정현 대변인은 "힘 있는 집권 여당이 표현의 자유와 국민 알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누가 보호한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도 "권력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국가가 처벌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던 역사가 민주 진보 진영의 시작점이었다"며 "고발을 취하하라"고 했다.

국민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다물어민주당'"이라고 했다. 안철수 창준위원장은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나도 고발하라"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너무 옹졸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비판이 나왔다. 파문이 커지자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이낙연 전 총리는 윤호중 사무총장에게 '고발을 취소하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윤 사무총장은 '우리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최근 이와는 별도로 고소·고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도 자유한국당의 자매 정당인 미래한국당 한선교 대표와 조훈현 사무총장 내정자를 정당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국민 의사를 왜곡해 자유로운 정당 선거를 방해한다"는 이유를 댔다. 지난 4일엔 황교안 한국당 대표도 같은 혐의로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