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11일(현지 시각) 위증 등의 혐의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에 대한 검찰의 구형(求刑)량을 낮춰달라고 법원에 요구하자 수사 검사 4명이 "사건을 맡지 않겠다"며 집단 반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검사 중 한 명은 아예 연방검사 직을 사임했다. 형사(刑事) 사건에서 정치적 개입에 저항해 검사들이 집단으로 사건을 포기한 것은 처음이라고 미 언론은 밝혔다. '미국판 검란(檢亂)'인 셈이다.
이 사건의 단초가 된 인물은 공화당 전략가 로저 스톤(67)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수십년 지기(知己)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비선(祕線) 참모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킹 메이커' 역할을 했던 그는 트럼프 캠프가 선거 때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에 개입하고, 그 조사 과정에서 위증한 혐의 등이 추가돼 불구속 기소된 상태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10일 낮 담당 수사 검사들과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의 참모들, 티머시 셰이 검찰국장 직무대행 등이 스톤에 대한 구형량을 협의했지만 의견이 갈렸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이날 저녁 검사 4명은 스톤에게 징역 7~9년을 선고해달라는 서류를 담당 판사인 애미 버먼 잭슨 연방판사에게 제출했다. 그러자 미 법무부 수뇌부가 바로 다음 날인 11일 오전 이를 번복해 스톤의 형량을 낮춰달라는 서류를 판사에게 다시 보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새벽 1시 48분 트위터에 "매우 끔찍하고 불공정하다" "이런 무고한 사람에 대한 기소를 용납할 수 없다"고 쓴 직후였다.
2주 전 트럼프가 새로 임명한 티머시 셰이 연방 검찰국장 직무대행 명의로 된 법무부 의견서에는 "스톤은 투옥돼야 하지만, 7~9년은 과도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미 정치권과 언론에선 법무부의 정치 개입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은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한결같은 '협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며 "법무부가 또 러시아 스캔들 조사와 관련해 친(親)트럼프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역할도 맡는다. 워싱턴포스트는 또 "검사들은 사임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형량 변경 서류에 자신들의 이름을 첨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스톤에 대한 구형을 '공중납치'했다"고 했다.
미 하원의 애덤 시프 정보위원장(민주)은 "대통령이 전문적인 검사들의 결정을 번복하는 데 개입했다면, 이야말로 명백한 권력 남용"이라며 "대통령이 자기 잘못을 감추려고 거짓 증언을 한 사람을 보호하는 작업에 법무부 장관도 가담했다"고 비판했다. 미 법무부의 전직 고위 관리들도 뉴욕타임스에 "정치적으로 임명된 법무부 수뇌부가 대통령 뜻에 따라 움직여, 형사사건에서 검사들이 합리적으로 결정한 구형량을 철회하는 상황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검사들의 집단 반발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11일 저녁 트위터에 "(검사들이) 터무니없게 9년형을 구형하고는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꼬리 자르고 도망갔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법무부의 구형량 번복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스톤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20일에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