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남아 있는 한국 교민 이모씨는 요즘 매일 집 근처 수퍼마켓에 가본다. 인구 1100만명인 중국 중부 최대 도시지만 이제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은 병원과 수퍼마켓, 편의점, 약국뿐이다. 이씨는 9일 전화 통화에서 "고기와 채소는 아침에는 있다가 오후에 가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11일이면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한 지 20일째를 맞는다. 중국은 1월 23일 오전 10시부터 우한의 공항과 기차역, 터미널을 폐쇄하고 대중교통 운행을 중단했다. 다음 날은 택시, 그다음 날에는 일반 자동차 운행도 멈췄다.

전례 없는 대도시 봉쇄는 이곳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중국 중앙정부는 의료진 수천 명을 우한에 파견하고 관영 매체는 의료진의 분투를 연일 중계하고 있다. 리커창 총리가 우한 내 물자 공급을 강조한 이후 산둥성이 대파 등 채소 350t을 보냈고 저장성이 냉동 돼지고기 1만t을 보내기로 하는 등 '물자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복합 전시 공간인 우한커팅(武漢客廳) 전시센터에 환자용 침대가 놓여 있다. 중국 당국은 병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우한에 이 같은 임시 병상 4400여개를 설치했고, 추가로 5400여개를 설치할 예정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의료 시설을 갖추지 않아 환자들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노력에도 우한 상황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봉쇄 당일 495명이었던 우한 내 확진 환자는 1만5000명 가까이 증가했다. 23명이었던 사망자도 608명으로 30배 가까이 늘었다. 봉쇄 이후를 기준으로 하루 평균 852명씩 새 확진자가 나왔고 34명씩 숨진 셈이다. 우한 내 치사율은 4.1%로 후베이성 이외 지역(0.3%)보다 10배 이상 높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지난 8일 우한에서 우한 폐렴으로 치료를 받던 미국인과 일본인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치사율이 높은 것은 의료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병상을 못 구해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도 많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9일 우한의 한 아파트에 자가 격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중년 여성이 공(금속 타악기)을 치며 "숨쉬기 힘든데 치료를 못 받고 있다"고 호소하는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장차오량 후베이성 당서기는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의심 환자에 대해 이틀 안에 진단을 마치겠다"고 했다. 발병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진단을 못 받은 의심 환자가 많다는 의미다. 우한에 와 있는 쑨춘란 부총리는 "지금은 전시(戰時) 상황"이라고 했다. 우한시는 남은 주민 900만명에 대해 매일 체온 측정을 의무화하고, 대형 소독차를 동원해 하루 두 차례 시내 주요 도로를 소독하고 있다.

중국 정부 대응에 대해선 "한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한시 정부가 지난 1월 11일까지도 "사람 간 전염 증거가 없다"고 하다 보니 이를 모르던 의사, 환자가 병원 안에서 대거 감염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우한대 중난병원 의사인 펑즈융은 중국 언론 차이신 인터뷰에서 "1월 28일까지 중난병원 확진자 138명 가운데 57명(41%)이 병원 내 감염이었다"고 했다.

애초 "물자와 시설이 충분하다"고 했던 후베이성과 우한시 정부는 병상이 모자라자 국제회의장, 체육관을 빌려 4400여 병상 규모의 '임시 병원'을 만든 데 이어 중국공산당 우한시당교(黨校)와 대학교에도 매트리스를 깔아 5400여 병상을 만들 예정이다. 확진 환자라도 비교적 젊거나 경증인 경우 임시 병동에 수용한다는 것이다.

1만 병상짜리 '병원 아닌 병원'에 환자를 수용하면서 침대 프레임도 없이 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기도 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중앙난방을 차단하고 전기장판을 지급했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지급한 전기장판은 안 켜져 추위에 떨어야 하고, 의사나 간호사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우한 주민은 집 안에 있지만 일부 시민은 집 밖으로 나와 창장(長江) 강변에서 조깅을 하거나 아이와 공놀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버려졌다"는 고립감과 언제까지 봉쇄가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