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땅 양지바른 곳에 소박하게 꾸민 롯데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묘.

지난 1월 19일 롯데 창업주 신격호(1921~2020) 회장이 100세 나이로 별세했다. 국내 5대 그룹 창업주들 가운데 마지막이자 최장수 인물이었다. 다른 창업주들은 선대에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출발하였거나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반면 신 회장은 일본롯데를 일으킨 자수성가형이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투자 요청을 받고 일본 자금을 들여와 한국의 롯데그룹을 일구었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근면함에 있다[大富由天 小富由勤]"고 '명심보감'은 말한다. 주자(朱子) 같은 성현도 사주와 풍수를 신봉하여 "부귀영달은 탐내고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일대기를 추적하다 보니, 신 회장은 분명 하늘이 낸 인물이다. 하늘이 어떻게 신 회장을 대부(大富)로 만들었는지 풍수와 사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생가 터 일대가 풍수상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형국[靈龜飮水形]'의 길지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 마을이나 그 집에서 신 회장만 태어난 것은 아니다. 또 터만 가지고 100세라는 최장수를 설명하기도 어렵다. 왜 그만이 한·일 양국에서 우뚝 선 큰 부자가 되었을까? 이러한 곤란함을 술사들은 사주로 빠져나간다. 한 사람의 성공에는 풍수보다 명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一命, 二運, 三風水'라는 격언이 있다. 첫째는 타고난 명(命), 둘째는 타이밍[運], 그리고 셋째가 풍수라는 것이다.

그의 사주는 아직까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필자는 우연히 신 회장 사주를 볼 수 있었다. 사주 여덟 글자[팔자] 가운데 신 회장을 상징하는 생일의 천간[日干]은 경(庚)이다. 경(庚)은 광산에서 캐낸 원철[金]로 순수하면서도 힘이 세다. 위기를 모면하는 임기응변의 재주가 탁월하다. 난세의 영웅 사주로, 자기를 격하하는 말을 들을라치면 무섭게 돌변하기도 한다.

팔자의 오행 구성을 보면, 자신을 상징하는 경(庚)을 포함하여 금(金)이 다섯 개다. 팔자에 금이 하나인 것을 금(金·황금)이라 한다. 금이 두 개인 것을 병(鍂·황금으로 만든 귀한 악기)이라 한다. 금이 세 개인 것을 흠(鑫·황금이 많아 크게 기쁨)이라 하고, 금이 네 개인 것을 보(𨰻·황금이 아주 많음)라 하고, 금이 다섯 개인 것을 만(鏋·황금이 가득 참)이라 한다.

청나라 황제로서 장수(89세)를 누린 건륭제의 사주 구조 및 내용과 흡사하다. 10여 차례 정복 사업을 펼쳐 중국 영토를 최대로 확장한 인물이다. 건륭제가 무력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면, 신 회장은 상품으로 시장을 정복하였다. 두 사람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일까?

별세 후 고향에 조성된 그의 무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생전 고향을 그리워하여 그곳 양지바른 언덕에 묻히는 것이 고인의 뜻이었다. 천 리를 달리던 말이 안장을 벗어 놓고 편히 쉬는 주마탈안형(走馬脫鞍形)이다. 무덤은 가로·세로 5m 안팎의 좁은 묘역에 일반인 봉분 높이 절반도 안 된다.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묘역의 규모나 화려함의 20분의 1도 안 된다. 무덤의 소박함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자(程子)는 주역 겸괘(謙卦)를 “크게 소유하면[大有] 가득 채워서는 안 되고 반드시 겸손함과 덜어냄[謙損]에 있음”이라고 풀이하였다. 신 회장의 뜻이 바로 겸괘에 있다. 그래서 군자가 아름다운 마침을 얻을 것이다[君子有終]. 군자의 죽음을 종(終), 소인의 죽음을 사(死)라고 한다. 종(終)은 시작[始]을, 사(死)는 소멸을 전제한다. 종(終)은 부활을 의미한다. 그의 무덤은 겸괘의 종(終)을 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