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매끄럽고 노련하다. '나이브스 아웃'(감독 라이언 존슨)은 모처럼 영화를 보는 순수한 쾌감과 기쁨으로 보는 이를 인도한다. 좋은 영화니 어렵고 힘들고 지루해도 봐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건 '나이브스 아웃'을 볼 때만큼은 내려놔도 좋다. 작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영국 아카데미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으며, 9일(현지 시각)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상 각본상 후보다. 조만간 속편도 제작될 예정. 국내에선 작년 말 개봉했으나 아직까지 상영관을 찾을 수 있다.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였던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이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저택에 있었던 모든 이가 용의자다. 경찰과 함께 등장한 이는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대니얼 크레이그). 경찰과 달리 블랑은 "이 사건에 뭔가 미심쩍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랩 대령을 연기했던 크리스터 플러머, '007' 시리즈의 대니얼 크레이그, '캡틴 아메리카'인 크리스 에번스와 '유전' 등에서 명연기를 펼쳤던 토니 콜레트까지…. 배우들 보는 재미만으로 절반 이상은 해내는 영화다. 여기에 화려하지만 난잡하지 않은 미술과 물샐틈없이 이야기를 받쳐주는 음악도 훌륭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건 뭐니뭐니해도 각본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실화 영화를 만들거나, 원작 소설을 각색해서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요즘, 라이언 존슨 감독은 원작 없이 순수하게 영화를 위한 오리지널 각본을 직접 써냈다. 한 줄 한 줄이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처럼 촘촘하다. 완벽하게 맞춰진 퍼즐처럼 이야기가 맞물린다. 살인할 동기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있다. 주인공 누구나 정도껏 거짓말을 한다. 그중 누가 진실을 감추는가. 쫄깃한 두뇌 싸움이 반복되고, 기막힌 반전이 맞물린다. 러닝타임 130분이 쏘아올린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지금 현재의 미국인 점도 감탄을 부른다. 이야기의 전개나 미술을 펼치기엔 사실 19세기 영국이 더 편할 수도 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그러나 초상화와 거대한 벽난로, 화려한 골동품이 가득한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2019년 미국 한복판에서 펼쳐 보인다.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미국 상류층의 심장으로 카메라를 파고들도록 했다. 따라서 영화 속 주인공의 모든 반응은 곧 오늘날 우리를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다.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권리를 위협받을 때 돌변하고 마는 인간의 군상을 카메라는 번득이는 웃음으로 포착한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그리고 우리의 모습이 비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즐기던 관객의 심장을 '나이브스 아웃'은 그렇게 날렵하게 겨냥한다. 노골적이지 않아 명민하고, 재치가 빛나서 통렬하다. 칼날은 결국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