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는 4일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관련해 우리 정부의 중국 후베이(湖北)성 체류자 입국 금지 조치에 대해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며 "(교역과 여행 제한은 불필요하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근거에 따르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에 입국 금지 조치를 확대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싱 대사는 이날 서울 중국 대사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한 양국은 '운명 공동체'다. 서로 이해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했으면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한국에 부임해 아직 신임장을 제정(提呈)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주재국 언론을 대상으로 회견을 연 것은 이례적이다. 입국 금지 조치를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를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회견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전직 외교부 차관은 "외교 언어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달갑지 않다' '불쾌하다'는 우회적 표현"이라고 했다.

싱하이밍(邢海明) 신임 주한 중국 대사가 4일 오전 서울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싱 대사는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장 과학적이고 권위적인 기구”라며 “(이동 제한 여부는) WHO를 따르면 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싱 대사는 이날 약 28분간의 회견 중 앞쪽 18분을 한국어로 진행했다. 한·중 양국이 '운명 공동체'라고 두 번이나 말했다. 그는 '입국 제한 확대'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한국 기자에게 먼저 한국어로 "이런 문제 앞에서 사실 (양국은) 운명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중국 기자에게는 중국어로 "중·한 양국은 우호적 이웃으로 수십만 국민이 상대국에서 공부, 생활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운명 공동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등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을 아직 풀지 않은 중국이 '우한 폐렴'으로 난처해지자 뒤늦게 '운명 공동체'를 강조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싱 대사는 "중국 정부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책임 있는 태도로 국제 협력 중"이라며 "(중국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들 덕분에) 전염병이 타국으로 확산하는 속도가 효과적으로 줄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한국 정부와 각계 인사들이 눈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땔감을 보내주듯 우리의 전염병과의 투쟁에 큰 힘을 실어줬다"며 고마움도 표했다.

그는 "2015년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가장 심했을 때 중국의 장더장(張德江) 전인대위원장을 내가 모시고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는 다른 나라들이 이런 조치, 저런 조치 다 했다"고 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 당시 중국은 러시아·대만 등과 함께 사실상 여행 제한 조치를 취한 7국 중 하나였다. 광저우시, 쓰촨성, 산둥성 등 지방정부가 한국 방문 '자제 권고'를 했었다. 당시 중국은 관광객 수만 명의 한국 여행을 취소했고, 한류 콘서트를 준비하던 우리 관계자의 입국도 불허했다. 2015년 한국에서 발생한 메르스 환자는 186명으로, 현재 중국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환자 2만여명보다 훨씬 적었다. WHO는 이번과 달리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았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여행 계획 변경을 권장하지 않았다.

중국은 2016년 한국이 북핵에 대한 자위 목적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관광 취소, 한국 기업 불매 운동, 한한령 등 모든 수단으로 한국에 불이익을 줬다. 그 여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도 대북 제재 완화 등을 주장했다.

싱 대사는 지난달 말 우리 정부가 전세기를 급파해 우한 교민을 철수시킨 데 대해 "만약 중국 정부의 큰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 국민이 그렇게 빨리 돌아올 수 있었겠나"며 "중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은데도 한국의 바람을 존중하고 한국 정부에 큰 지지를 보냈다"고 했다. 외교가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訪韓)에 공들이는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